▲ 공무원노조가 지난 2월13일 대통령에게 해고자 원직복직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2002년 3월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대강당. 전국에서 모인 공무원 268명이 전국공무원노조 창립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장에는 ‘서민 울리는 부정부패 척결 공무원노조가 앞장섭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노조 강령과 규약, 노조 출범선언문을 채택한 직후 경찰이 대회장에 난입했다. 대회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대의원 178명이 연행됐다. 같은해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단결권만 부여하고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제약하는 내용의 ‘공무원의 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했다. 노조는 반발했다. 그해 11월4~5일 이틀간 연가를 내고 노동자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2003년 공무원들의 노조결성을 허용하겠다고 공약한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다. 같은해 10월 노동부(현 고용노동부)는 단결권·단체교섭권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제정안에 항의하며 노조가 파업을 준비하자 정부는 “집단행동에 가담한 공무원 전원을 엄중히 문책하고 형사처벌하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2004년 11월14일 파업 전야제가 열린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노천극장에 조합원 3천명이 모였다. 자정을 넘어가자 김영길 당시 노조 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외쳤다. “공무원노조 총파업 돌입을 선언한다.” 노조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조합원 4만5천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했다.

가는 길마다 상처 … 징계자 3천명·해고자 530명

공무원노조 역사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쓰였다. 정권 성격을 가리지 않고 정부는 공무원들의 노조활동을 가혹할 정도로 막았다. 노조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깊은 내상을 입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노조활동을 하다 무려 조합원 2천986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 중 530명이 파면·해임·계약해지·직권면직·당연면직 같은 ‘배제징계’를 받았다. 해고자가 됐다는 의미다. 2002년 노조 출범과 연가투쟁으로 15명, 2004년 파업으로 448명, 2004년 민주노동당 지지를 선언하는 정치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3명, 2009년 일간지에 “정권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고 싶습니다”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했다는 명목으로 18명이 해고됐다. 해고자 중 394명은 소청 절차를 밟거나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했다. 노조활동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136명은 해고자로 남았다.

29일 <매일노동뉴스>가 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회복투) 도움을 받아 해고자 전원의 현황을 확인했다. 장기간 해고생활이 이어지면서 5명이 숨을 거뒀다. 3명은 암에 걸려, 1명은 교통사고로, 1명은 정년(60세)이 넘어서던 올해 목숨을 끊었다. 18명은 투병 중이다. 심근경색·뇌출혈로 쓰러진 이도 있고, 암 같은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이도 있다고 한다.

38명은 나이가 정년을 넘어섰다. 해고자들은 정년을 넘으면 노조활동도 중단한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스스로 “정년퇴직”이라고 부른다. 해고자들의 평균 나이는 만 56.9세. 다수가 정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4명, 하반기에 6명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2023년이면 정년퇴직하지 않은 해고자는 62명밖에 남지 않는다. 기적처럼 특별법이 21대 국회를 통과해 복직 결정이 나더라도 직장에 돌아갈 수 없는 노동자가 대부분인 셈이다. 15년 전 ‘부정부패 척결’을 기치로 노조 깃발을 들었던 혈기왕성했던 노동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전과자 낙인찍혔는데, 누가 채용해 주나요?”

6급 공무원으로 수원시청에서 일하다 2004년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1월 해임된 조창형(60)씨. 해임 뒤 노조 수원지부장, 노조 대변인, 회복투 위원장을 맡으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올해 6월 정년퇴직했다. 그전 짬짬이 공부해 사회복지사·평생교육사 자격증을 땄다. 퇴직연령이 지나면 노조에서 나오는 생계비가 줄기 때문에 제각각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해임되면서 퇴직금을 일시불로 수령한 그는 공무원연금을 받지 못한다.

“나이 먹은 해고자를 누가 채용해 주나요? 노조활동을 하다 전과자가 됐기 때문에 신원조회에서 다 걸립니다. 한동안 집에 틀어박혀서 매일 술을 달고 살았어요. 수면유도제를 먹어야 잠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분노조절이 잘 안 돼 가족들에게 큰소리 내고, 그래서 심리상담도 받았어요.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자꾸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생활은 피폐해지고요. 마음을 다잡고 올해 10월부터 대외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무급으로 행정상담을 간혹 해 주고, 불러 주는 식당에 나가서 일하며 지냅니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동에서 만난 조씨는 “파업을 했다고 공직에서 배제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노조는 2004년 파업을 하며 온전한 노동 3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와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를 비준하라고 했다. 정부는 최근 87호·97호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노조가 요구한 지 15년 만이다.

“노조는 15년 전에 노조할 권리를 요구한 겁니다. 정부는 최근 핵심협약 비준 추진의사를 밝혔고요. 2004년 노조 파업이 정당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는 겁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재인 대통령, 국무총리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입니다. 자기들의 과거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길 바랍니다. 해고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결자해지하는 게 맞습니다. 우리가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분하고 아쉽습니다.”

최영종(59)씨는 충북 괴산군청에서 6급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4년 12월 파면됐다. 노조 충북본부장, 노조 재정국장 등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퇴직 전 휴직을 하고 있다. 내년 6월 정년퇴직한다. 노조 괴산군지부는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중 10명이 해고자 신세가 됐다. 최씨를 포함해 3명이 아직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복직한 이들도 징계 경력 때문에 승진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 충북 청주 자택 인근에서 만난 그는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해고와 징계가 발생했는데 그때 피해를 본 동료들을 보면서 두고두고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24년 공무원 생활을 하다 해고된 그는 매월 공무원연금 92만원을 받고 있다. 최근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하고 생계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최씨는 “세상 수많은 죄 중 괘씸죄가 가장 무서운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나쁜 짓 한 사람도 가끔 사면복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괘씸죄라는 게 있는 겁니다. 정부 눈에 우리가 괘씸해 보이는 거죠. 그러니 지금껏 사면복권도 해 주지 않는 거지요. 예전에는 누구를 만나도 해고자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는데요. 지금은 그러지 못합니다. 주위에서 ‘가만히 있었으면 승진하고 잘살았을 텐데 왜 나서서 저리 됐냐’는 비아냥을 듣습니다. 친구들 만나기도 두려워지더군요.”

그를 만나기 하루 전 충북지역 해고자 정기모임이 열렸다고 한다. 오랜만에 전체 인원 13명이 모두 모였다.

“해고된 직후부터 부인과 별거를 한 동료가 있어요. 어제(23일) 모임에 나왔죠. 우리가 노조를 시작했을 때는 나만 잘살려는 게 아니라 옆 동료, 나아가 전체 공무원이 좋은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지금 와서는 ‘그게 아니었나?’ ‘그러지 말아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견뎌 준 집사람과 아이들이 정말 고맙죠.” 동료 이야기를 하던 최씨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 해직공무원 왕준연씨가 말을 하던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심리적 저지선 무너뜨리는 ‘정년퇴직’

올해 10월 노조 회복투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2004년 12월 해임된 전대곤(사망당시 60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였다. 왕준연(58)씨는 대구 남구구청 6급 공무원이었던 그를 언제나 활기찼던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경북 상주시청에서 일하다 2004년 12월 해임된 전씨는 왕씨와 노조 활동을 같이하며 가까이 지냈다.

“그럴 분이 아닌데…. 다 뒤엎고 싶었어요.” 지난 20일 오후 국회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고인 이야기가 나오자 마시지도 못한 커피 잔만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왕씨는 이날 국회의원을 만나기 위해 상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일 때 공무원에게 온전한 노동 3권을 줘야 한다고 입법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대통령 당선 뒤 노조가 노동 3권 보장을 요구하자 우리를 해직시킨 겁니다. 배신감이 들지요. 이제 그의 적통을 이었다는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해고자가 숨진 겁니다. 노무현이 해고하고 문재인이 죽인 겁니다.”

그는 평일에는 노조 상주시지부 지도위원으로 상근하고 주말에는 농사를 짓는다. 생계를 위해 농업을 택한 것이다. 노조는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잇따른 죽음이 논란이 되자 2016년 공무원 해고자를 대상으로 우울증 관련 조사를 했다. 응답률은 46%로 낮았다. 응답자의 33%는 정상, 14%는 약한 우울, 29.8%는 상담이 필요한 중한 우울, 22.8%는 치료가 필요한 우울로 조사됐다. 김은환 회복투 위원장은 “설문을 독려해도 잘 응하지 않고, 그런 조사 자체를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미응답자 상당수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고 짐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복투는 녹색병원과 함께 재차 우울증 조사를 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한 동사무소(현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다 해고된 오현근(55)씨. 그는 복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복직한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해고 기간이 너무 길어서 복직하더라도 상처가 회복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복직이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일부러라도 안 합니다.”
 

정부 사과하고 명예회복 조치 해야

지난 23일 노조 동해시지부에서 만난 박영호(55)씨는 “복받은 해고자”라고 말했다. 강원도 동해시청 공무원이던 그도 2004년 파업에 참여해 그해 12월 파면됐다. 노조 동해시지부는 2004년 파업에 지부 조합원 90% 이상이 동참했다. 지도부 해고 직후 잠시 감소했던 조합원수는 곧바로 회복했다. 현재 조직률이 95%에 이른다. 튼튼한 지부는 해고자 활동의 버팀목이다.

“강원본부 해고자들은 복받은 거지요. 회복투 활동도 본부 차원에서 지원해 줍니다. 해고자와 일반 조합원들 사이의 유대활동도 꾸준히 이어 가고 있고요. 본부나 지부가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곳의 해고자들은 외로움을 느낄 겁니다. 쌍용차 해고 동지들이 겪은 고통이 공무원노조에서 재현할까 봐 두렵습니다. 요즘 해고자들 만나면 ‘의미 없이 죽지 말자’고 말합니다. 저도 고민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른 해고자처럼 전과 15범이에요. 최근 아내와 함께 택시운전 자격증을 땄습니다. 화물운송 자격증 취득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택배라도 해 보려고요.”

해고자들은 해고자 복직 문제가 앞으로 노조활동에 영향을 미치리라 내다보고 있다. 조창형씨는 “사용자인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과정에 징계를 받더라도 노조가 보호해 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노조 투쟁력이 왕성해진다”며 “해고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조합원이 앞장서 투쟁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에는 “공개사과하고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요구했다.

최영종씨는 “퇴직을 앞두고 남들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명예라도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보훈(57) 회복투 집행위원장은 “퇴직 후 생계비가 끊겨 어렵게 사는 선배들을 보며 곧 닥칠 내 미래에 두려움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과거 투쟁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노조 차원의 대책과 정부 차원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정남·강예슬 기자

 

해직공무원 복직 특별법 이대로 좌초하나
국회 행정안전위 법안 처리 포기 … 노조 “임시국회 열어서라도 통과시켜야”


전국공무원노조에서 첫 해고자가 발생한 2002년 이후 지금까지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공무원은 모두 136명이다. 길게는 17년, 짧게는 4년을 해고자로 살았다. 공무원 해고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국회 논의는 18대 국회부터 본격화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대 국회(2009년)와 19대 국회(2012년)에서 노동조합 관련 해직 및 징계처분을 받은 공무원의 복권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모두 회기 종료로 자동폐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공무원 해고자의 일괄복직과 사면복권을 약속했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는 두 건의 공무원 해고자 복직관련 특별법이 계류 중이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노동조합 관련 해직공무원 등의 복직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과 같은 당 홍익표 의원이 발의한 노동조합 관련 해직공무원 등의 복직 등에 관한 특별법이다.

행안위에서는 정부·여당이 합의한 홍익표 의원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홍익표 의원안은 해직기간 전체를 근무경력으로 인정하는 진선미 의원안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조가 합법노조였던 3년10개월만 근무경력으로 인정한다. 노조는 홍익표 의원안에 적잖이 반발했지만, 20대 국회 통과를 목표로 홍 의원안에 힘을 싣고 있다.

국회 통과 전망은 어둡다. 지난달 28일 열린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공무원 해고자의 아픔에 공감한다”면서도 추가논의가 필요하다며 회의를 종료했다. 여야는 각 당 원내대표와 지도부에 상임위 의견을 전달하기로 합의했다. 상임위에서 처리하지 않고 원내대표 간 협상 목록으로 떠넘긴 것이다.

당사자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 김은환 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장은 “국회의원들이 무책임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며 “국민에게 이야기할 때는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이라고 권위를 강조하면서 이 정도 법안조차도 자기 판단을 못하고 지도부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임시국회를 열어서라도 20대 국회에서 특별법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강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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