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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사제, 달라도 너무 다른 스웨덴 발렌베리와 한국 재벌

기사승인 2020.02.17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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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호 노동운동가

‘발렌베리’라고 있다. 한 가문의 이름이고 기업집단의 명칭이다. 최적화된 자본주의 체계이면서도 사회주의 체계에 가장 가까운 북유럽의 스웨덴 가문이고 기업집단이다. 발렌베리는 SEB(금융)·에릭슨(통신)·일렉트로룩스(가전)·스카니아(건설장비)·아스트라제네카(제약) 등 한국인의 눈과 귀에도 익숙한 세계적 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대를 차지할 만큼 막강한 그룹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발렌베리를 유럽 최대 산업 왕국으로 평가했다. 한국으로 치면 재벌이고 삼성을 능가한다. 발렌베리 그룹도 한국의 재벌처럼 가문이 그룹의 소유권과 총괄경영권을 행사한다. 5대째다.

지난해 발렌베리의 대표경영인 마르쿠스 발렌베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스웨덴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발렌베리 가문에 대해서는 한국 언론도 호의적인 편이라, 발렌베리 회장의 방한 동정이 많은 기사로 나왔다. 그때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발렌베리 회장을 만났다. 이건희 회장 시절부터 발렌베리는 삼성 가문의 롤 모델이라 했다. 이재용은 발렌베리 방한을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발렌베리에 대한 우호적 이미지를 삼성 이재용 체제로 연결하는 기획 이벤트로도 훌륭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는 그림은 그럴듯했다.

그러나 씁쓸했다. 발렌베리가 롤 모델이라고 한다면, 삼성 가문은 발렌베리의 투명경영과 사회공헌이라는 모범은 왜 따라 배우지 않을까. 좋은 점을 따라 배우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같은 경제범죄를 왜 저질렀을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도 모자라서 증거를 공장 바닥에 숨기는 행위를 왜 했을까. 삼성가 롤 모델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이벤트성으로 치부하는 삼성의 모습이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발렌베리 가문에는 10개 조항으로 구성된 가훈이 있다고 한다. 일요일 아침마다 자녀들과 산책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형제간 옷을 대물림하며 검소한 생활을 몸에 익힌다, 튀지 않게 행동한다 등이 있는데 또 하나가 ‘돈은 번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조항이란다. 실제 그렇게 실행한다고 한다. 멋지다. 재벌 가문 처지에서는 푼돈일 텐데 회삿돈으로 집수리를 하다가 횡령에 걸린 삼성 가문과 비교해 보자. 다들 눈살이 찌푸려질 것이다.

발렌베리 회장이 방한했을 때 사측을 대표하는 모 단체의 대표가 만났다고 한다. 그가 발렌베리 회장에게 노동이사제에 대해 질문했단다. 아마 노조 압박에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는 부정적 답변을 기대하지 않았나 싶은데, 발렌베리 회장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고 한다. “노동이사제는 경영에 도움이 된다. 한국도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라”는 취지로 노동이사제를 극찬했다고 한다. 일화를 전해 들으면서 한국의 재벌 총수 중 누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었고, 발렌베리 같은 기업과 어우러져 한편으로 투쟁하고 한편으로 타협하며 노사관계를 풀어가는 스웨덴 노동자가 부러웠다. 이래서 발렌베리가 5대째 무난하게 경영을 총괄하고 있구나 싶었다. EBS <지식채널e> ‘스웨덴 발렌베리家’에서 보면 “발렌베리 가문의 철학은 노동자가 경영의 동반자고, 노조 대표를 이사회에 중용한다”고 한다.

스웨덴은 노동이사제를 시행하는 나라다. 조돈문의 <함께 잘사는 나라 스웨덴>에 따르면 25인 이상 고용업체는 2명의 노동이사를 두고 1천인 이상 고용업체는 3명을 둔다. 스웨덴 기업의 이사회는 대체로 7명으로 구성된다고 하니 절반에 가까운 숫자를 노동이사로 채우는 것이다. 그만큼 노사가 책임의식을 갖고 함께 기업을 경영하면서 노동자 권리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경영은 총수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노조를 귀찮게 여기는 현재의 한국 재벌 풍토에서는 참으로 부러운 이야기다.

발렌베리 가문의 특징을 보여 주는 얘기가 또 있다. 하수정의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에 따르면 “발렌베리 가문은 원칙적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지만 가문 내 대표를 두고 있다. 그런데 그 대표를 선정할 때 기준이 있다. 군 복무를 마쳤으며, 부모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와야 한다. 또한 스스로 경영 능력을 입증해 보인 사람”이어야 한다.

한국의 재벌 가문도 발렌베리처럼 소유권과 경영권을 대를 이어 물려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재의 재벌 풍토에서는 갈수록 국민의 반감이 배가될 것이다. 실제 그렇게 흘러왔다. 2대 상속은 쉽게 했으나, 3·4대 상속에서는 만만치 않은 반감과 법의 엄격함을 확인했다. 이미 재벌사에 입사한 젊은 직원들은 예전처럼 ‘우리 회장님, 회장님’ 하지 않는다. 강압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공공기관의 노동이사 도입에 시비는 걸지 말아야 한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일정한 시점이 흐른 뒤에 재벌기업에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전에는 노동을 존중하고 투명경영을 할 수 있도록 총수 마음대로라는 인식체계를 뜯어고치고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발렌베리 가문처럼 100년 넘게 기업그룹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재벌들의 변화를 기대한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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