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적극적 재정정책을 펴겠다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진보진영은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는 재정에 대한 대통령의 관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모두 발언과 관련해 몇 가지 쟁점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우선 대통령은 “지금은 누구를 위한 재정이며, 무엇을 향한 재정인가라는 질문이 더욱 절박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맞다. 하지만 얘기가 하나 빠졌다. 앞에 ‘제한된 재정하에서’라는 조건문이 붙어야 한다. 모든 경제적 문제는 희소성이란 제약조건 속에서 최대화 문제를 푸는 것이다. 희소성은 세입과 국가부채의 한계이고, 풀어야 할 최대화 문제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피해를 지원하는 것이다. 조건을 빼고 문제를 풀면 오답을 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이어서 “경제 전시상황입니다. 전시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정부의 재정역량을 총동원해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전시상황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우선 전쟁은 섬멸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전도 있다. 섬멸전이 압도적 전력으로 단기간에 적을 괴멸시키는 것이라면, 지구전은 긴 시간 동안 전력을 소모하면서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어 승리하는 것이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계속되는 긴 싸움이다. 재정은 기나긴 바이러스와의 지구전을 대비하며 사용해야 한다. 지구전이 필요한 싸움에서 총력전을 하면 전쟁에서 패한다. 코로나19 재정전략의 패배란 국가부채 부담으로 방역을 충분히 할 수 없는 상황, 또는 지나친 국가부채로 나라가 부도가 나는 상황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불을 끌 때도 초기에 충분한 물을 부어야 빠른 진화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 역시 앞의 두 문제를 간과한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비유해 보자면, 물이 충분하지 않고 꺼야 할 불이 너무 클 때도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초장에 물을 모두 쏟아부으면, 결국에는 산을 모두 태워 버린다.

한편, 대통령은 미래 상황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것 같다. 그는 “경제위기 극복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한국판 뉴딜도 준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방역과 방역에 따른 피해를 지원하는 것도 버거운 현 상황에서 느닷없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뉴딜 대상은 디지털 경제와 친환경 경제다. 하지만 이는 뉴딜은 물론이거니와 디지털과 친환경 경제에 대해서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먼저 1930년대 미국 뉴딜은 새로운 도약이 아니라 끊어진 성장의 길을 잇는 것이 핵심이었다. 20세기 초부터 이뤄진 2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성장이 1929년 대공황으로 중단됐고, 루스벨트 정부는 과거의 제도를 새로운 경제에 걸맞게 개혁했다. 재정정책은 개혁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역할을 했다. 반면 한국 경제는 끊어진 성장을 잇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불가역적 저성장 위기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겪게 된 상황이다. 뉴딜과 그다지 관계없다. 잘 버티는 것이 중요한 시기다. 더구나 한국 경제가 정부 주도로 추격 성장을 하는 시기도 아닌데, 재정정책으로 도약의 발판을 만들자는 것은 주소를 한참 잘못 찾은 이야기라 하겠다.

정부가 재정을 쓰겠다는 디지털과 그린 경제도 사실 쟁점이다. 단적으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세계 최고 디지털 기업들은 네트워크를 독점해 정보 유통 통행세로 이익을 얻고 있다. 고용 효과가 별로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지대 추구 경영으로 인해 국민경제 발전에도 오히려 부정적 효과를 미치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속성이 독점·지적재산권·네트워크 효과 같은 지대 추구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바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그린 경제의 경우 당연히 필요하긴 하나, 과연 지금 같은 미증유 경제위기에 할 수 있는 사업인지가 쟁점이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석유에너지에 비해 막대한 비용 부담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즉 생산성을 희생하며 전환해야 하는데, 이것을 굳이 코로나19 경제위기에 해야 하는지 의문이란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충분한 재정투입을 통해 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여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의 악화를 막자”고도 얘기했다. 또한 “우리 국가재정은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매우 건전한 편”이라며 재정건전성 우려가 기우일 뿐이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따져 보면 이 발언 또한 문제가 있다.

한국 원화는 달러·유로·엔 같은 세계 여러 나라가 사용하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관리통화 제도에서는 통화가치가 정부 지불능력 또는 정부에 대한 금융시장 신뢰로 유지된다. 그런데 비기축통화를 사용하는 국가는 그 신뢰의 기본수준이 기축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채무가 증가하면 당연히 지불능력과 신뢰가 더 빠르게 하락한다.

선진국 중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와 한국을 비교해 보자. 국제통화기금(IMF)의 2019년 추정치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은 대만 34%, 스위스 39%, 스웨덴 37%, 노르웨이 40%, 이스라엘 62%, 오스트리아 42%, 한국 40%다. 이 중 5년 사이 가장 빠르게 증가한 나라는 노르웨이와 한국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5년 내 가장 높아질 나라는 이스라엘과 한국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안심해도 되는 상황이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재정전략회의 모두발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가 있다. 재정의 경제적 제약에 대해서나,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서나, 특히 코로나19 방역의 어려움에 대해서나,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통령에게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한번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스톡테일 패러독스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낙관적 생각이 오히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교훈이다. 베트남전 때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10년 가까이 세월을 보내고도 살아남은 제임스 스톡데일 미군 장군은 현실적인 비관주의자보다 비현실적 낙관주의자가 오히려 포로수용소에서 적게 생존했다고 얘기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관점이 필요한 때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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