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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임금 3천300만원 두고 쫓겨 간 이주노동자

기사승인 2020.06.04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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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규모 8개월 동안 800억원 … “국가가 알선한 일자리, 국가가 책임져야”

   
▲ <매일노동뉴스>는 지난달 24일 썸낭씨와 안산시 원곡동 지구인의 정류장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사장님이 계속해서 법을 어기면 언젠가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3일 오후 썸낭씨는 캄보디아로 돌아갔다. 정소희 기자

캄보디아인 썸낭(27·가명)씨는 3천300만원의 체불임금을 받지 못한 채 결국 쫓기듯 한국을 떠났다. 지난해 4월 고용노동부에 제기한 체불임금 진정건은 1년2개월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았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썸낭씨는 2015년 고용허가제로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아 한국 땅을 밟았다. 캄보디아 대학에 합격했지만 진학을 포기했다. 가족 10명을 홀로 부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한국은 캄보디아보다 임금이 훨씬 높으니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월평균 임금은 주 6일제 기준 봉제노동자 182달러(약 22만원)·대졸 사무직은 700달러(약 85만원)다.

경기도 여주의 채소농장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하루 8시간 일한다는 조건으로 근로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노동시간은 계약과 달랐다. 매일 평균 하루 2시간의 연장근무를 했다. 농장주는 항의하는 썸낭씨에게 “다른 농장도 이렇다”는 말만 반복했다. 연차도 쓰지 못하고 한 달에 이틀만 쉬었다. 계약서에는 식비에 관한 내용은 없었지만 숙박비와 식비 명목으로 월 10만~20만원의 임금이 공제됐다. 같이 일했던 한국인 ‘아르바이트 아줌마’가 “돼지 축사 같다”고 표현한 작은 방이 그와 동료들의 기숙사였다.

항의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썸낭씨는 “사장님에게 불만을 제기하자 때리려고 한 적이 있어 무서워서 참고 일했다”며 “3년10개월을 일한 뒤 사업장변경을 결심하고 고용복지센터로 갔다”고 말했다. 지역 고용복지센터에서 그는 “사장에게 사과하고 화해하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주위 사람들이 알려 준 시민단체 ‘안산 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았다. 그는 이 단체에서 노동자 권리와 소송 절차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 집계한 체불임금 규모는 연차수당과 초과근무한 시급을 포함해 3년10개월간 3천300만원이나 됐다.

‘상시근로자 5명 미만 농장’ 사각지대

이주노동자 체불임금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는 꽤 오래됐다. <매일노동뉴스>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8월 말 기준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액은 797억원이나 된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에서는 4천건 넘는 최저임금법·근로기준법 등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됐다.

썸낭씨 사건을 대리한 조영신 변호사(원곡 법률사무소)는 “임금을 돌려받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노동자 임금 소송을 여러 건 수행했다. 대개 썸낭씨같이 수천 만원이 체불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언어 장벽이나 정보 부족으로 체불 사례가 신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신고 이후 시간에 쫓기는 쪽은 역시 이주노동자다.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체불 사건을 의뢰해도 사실 확인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민형사 재판으로 넘어가면 부담은 더욱 커진다. 썸낭씨 사건 역시 근로감독관이 체불임금 사실 확인서를 써 주기까지 7개월이 걸렸다. 그사이 비자 만료 기한은 계속 흘러 썸낭씨는 임시비자(G-1)를 받아야 했다. 임시비자로는 임금노동을 할 수 없다.

조영신 변호사에 따르면 ‘상시근로자가 5명 미만이고 법인이 아닌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특히 임금체불 위험에 놓여 있다. 이들은 연차수당·노동시간·체당금을 놓고 문제를 겪는다. 농장은 하우스 재배가 보편화돼 사실상 제조업에 가까운 경우가 많지만, 아직도 노동시간 특례업종이라 무제한 노동을 한다.

업주는 법의 허점을 파고든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연차수당 지급 의무도 없는데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썸낭씨가 일한 농장은 상시근로자가 5명을 넘었지만 농장주는 근로감독관에게 5명 미만 사업장이라고 증언했다. 임금채권보장법은 상시근로자가 5명 미만이고 농업이면서 법인이 아닌 경우에는 체당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조 변호사는 “사용자는 임금 지출내역을 통해 상시근로자수를 쉽게 증명하지만 노동자는 증명하기가 어렵다”며 “상시근로자수와 초과노동시간은 사업주가 증명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도 허점 활용하는 사업주
시간에 쫓기는 이주노동자


썸낭씨는 행정관청이 사용자를 대리하는 태도에 관해서도 토로했다. 근로감독관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로 매일 출퇴근 시각과 업무지시를 받은 내역을 제출했고, 상시근로자수가 5명 이상임을 증명하는 사진도 냈지만 재판에서 임금체불액을 주장한 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고령화와 인력부족에 시달린 농민들은 “이주노동자 없이 농사 못 짓는다”고 말한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재입국 취업자를 포함해 농축산업과 어업에 종사하기 위해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는 매년 1만명 수준이다.

조 변호사는 “고용허가제는 국가가 채용을 알선했는데 이주노동자를 보호하기에는 구멍이 너무 크다”며 “정부가 나서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썸낭씨는 “농장주는 사업장 변경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데 임금을 줄 때는 우리가 일을 못한다고 한다” 고 비판했다. 그는 출국을 앞둔 심정을 고하며 “임금을 받고 싶은 게 아니라 근로계약을 어긴 사업주가 벌을 받는 정의로운 결과를 원한다”며 “근로계약서에 적힌 내용만이라도 준수 해달라”고 호소했다.

정소희 sohee@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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