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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륜경기 전면 중단 7개월] 배달·대리운전 내몰린 경륜선수들 “이렇게 은퇴하고 싶진 않다”

기사승인 2020.09.2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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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체육진흥공단 적립금 553억원 쌓고도 선수에겐 500만원 ‘대부’ 지원만

   
▲ 코로나19 확산 초기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경륜경기를 중단했다. 경기 상금에 생계를 의존하던 경륜선수들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대리운전·배달에 나섰다. 연습용으로 구비했던 자전거도 팔았지만 여전히 생계는 막막하다. <경륜선수노조>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그는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배달애플리케이션과 대리운전앱의 프로모션 알림을 계속 들여다봤다. 인터뷰하는 한 시간 반 동안 그는 집중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그에게 시간은 돈이다. 그것도 간절한. 모든 수입이 끊겨 버린 2월 이후, 자전거 페달을 밟던 발로 남의 차의 액셀을 밟는다. 강만규(43·가명)씨, 그는 경륜선수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지난 2월23일부터 모든 경륜경기를 중단했다. 경기에 의존해 생계를 꾸리던 경륜선수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선수들은 생계를 꾸리려 밖으로 돌았다. 7개월여가 흐른 지금, 그들에게 남은 것은 카드 ‘돌려막기’로도 어쩌지 못하는 수천 만원의 빚더미와 자전거 한 대뿐이다. 연습용으로 챙겨 뒀던 두어 대의 자전거는 이미 팔아 치웠다. 200만~300만원의 고가 연습용 자전거는 중고매장에서 40만~50만원에 팔렸다.

생계 위한 ‘임시방편’ 대리운전·배달·택배 상하차
사고로 원치 않는 은퇴한 동료 소식에 ‘먹먹’


“경기를 하고 싶습니다.”

선수경력 19년차. 마흔이 넘은 강씨 말에 한숨이 섞여 나왔다. 운동선수답게 크고 단단한 몸집을 자랑하는 그다. 자전거에서 내려온 그는 3월께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강씨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공단은 곧 경기를 재개할 것이라면서 일주일만 경기를 멈춘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단은 곧이어 2주를 더 연기했고, 이어서 또다시 2주를 미뤘다. ‘찔끔찔끔.’ 이런 식이다.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도 어렵게 말이다. 경륜은 다음달 22일까지 중단이 확정된 상태다.

경기가 조만간 열릴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선수들은 하나둘 밤거리에서 운전대를 잡았다. 왜 대리운전이었을까. 강씨는 “낮에는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만간 경륜이 재개하면 곧바로 선수로 출전해야 하는 터라 몸 관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한참 연습을 한 뒤에는 너무 피곤해 자기 차 운전하기도 싫어했다는 강씨는 이제 새벽 3시까지 취객의 운전대를 대신 잡는다.

“참담했습니다.” 강씨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선수로서 달려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도 간신히 붙잡고 있어요.”

지금은 연습도 하지 못한다. 대리운전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었던 강씨는 이제 낮에는 배달일을 한다. 석 달쯤 됐다. 지난 1일부터 25일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는 400건 넘게 배달했다. 전업 배달노동자라고 해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차라리 다른 일을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물었다. “내년 3월께면 시합이 재개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해서라도 버텨 보자고 생각합니다. 20년 이상 페달을 밟았는데 이렇게 은퇴하고 싶진 않아요. 이건 아니에요.” 경륜을 손에서 놓을 수 없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으니 ‘‘버티기용’ 임시방편을 찾았다는 것이다.

경륜경기장 밖은 위험했다. 이들이 임시방편으로 택한 일자리는 주로 대리운전과 배달, 택배 상하차다. 셋 모두 코로나19 확산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고위험 직군이다. 임시방편에 불과했던 일을 하다 은퇴한 선수도 많다. 강씨는 “어제도 동료선수가 다쳤다”며 “부상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그대로 원치 않는 은퇴를 한 선수들이 많다”고 전했다. 더 이상 서로를 위로할 말도 없어진 선수들은 이제 공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선수 은퇴 소식만 접하고 먹먹해할 뿐이다.
 

생계가 막막해진 경륜선수들은 정부에 노조 설립신고증 교부를 촉구하고 있다. 경륜선수노조는 출범 당시 선수의 처우와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결성했지만, 지금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됐다. 지난 21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경태 노조 위원장의 모습. <경륜선수노조>

선수등록·출전경기 배정까지 관여한 공단
선수에 500만원 대부하고 “상금으로 갚아라”


경륜선수가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공단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선수등록을 하고, 참가 신청서를 보낸다. 공단은 경륜선수가 뛸 경기수와 일정을 모두 정한다. 경륜선수에게 선택권이 없는 구조다. 출전한 경기 성적에 따라 상금을 받는다. 사실상 유일한 수입원이다. 한 해 동안 18~19경기가 치러진다. 선수당 약 16경기 정도 출전하는 게 통례다.

경기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거두면 질책을 듣는다. 질책과 징계는 한 끗 차다. 1~3위 내 입상을 기대한 선수가 4위 밑으로 내려가면 관계자들에게 불려가 ‘소명’을 해야 한다. 11년차 경륜선수 안기선(39·가명)씨는 “선수가 경기에서 잘하지 못한 것을 뭐라고 소명을 해야 하느냐”며 “지속적으로 성적이 안 좋은 하위권 선수는 시즌종료 뒤 아예 선수등록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징계한다”고 했다. 선수 생사여탈권을 공단이 쥐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진 이유는 경륜경기가 사행산업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관중은 경륜선수에게 ‘베팅’을 하고, 이 수익으로 공단이 굴러간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선수를 질책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선수가 성적을 내지 못하면 고객 민원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선수 지원이나 관리가 전무하다 보니 부상을 당해도 선수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치료나 재활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장비관리조차 선수 몫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륜경기가 멈춘 뒤에도 마찬가지다. 공단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를 뛸 수 없는 선수들을 위해 마련한 대책은 생활안정을 위한 무이자 대부지원이 전부다. 공단은 3월과 이달 2회에 걸쳐 각각 300만원·200만원을 대출해 줬다. 그러나 이마저도 경륜재개 뒤 받은 상금을 분할해 공제하는 방식으로 상환하는 조건을 걸었다. 선수 입장에선 미래의 기대수익을 끌어와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풀 보따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공단은 2월23일 경륜경기 중단 이후 비상경영에 돌입해 복리성 경비를 전액 삭감하고 부서 운영비와 사업추진비를 50% 이상 축소해 경상경비를 30% 가까이 줄였다. 그러나 손실보전준비금 553억원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간 영업익을 내면서 꾸준히 쌓아 둔 쌈짓돈이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는 과다하게 적립했다는 지적을 받아 100억원을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선수들은 이 돈을 풀어 생계지원을 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공단은 묵묵부답이다.

“스크래치 난 상품 누가 사겠냐”는 공단
‘사람대접’ 받기 위해 노조설립 시도


견디다 못한 선수들은 최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노조 설립신고증을 교부하라는 요구다. 당초에는 선수들이 겪는 인권침해에 가까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꾸리기로 했다. 3월26일 노조설립 총회를 열고 나흘 뒤인 30일 노조 설립신고를 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노조설립은 생존 문제가 됐다. 이경태 경륜선수노조 위원장은 “선수협의회를 구성해 대화를 요구해도 움직임이 없어 대화 테이블을 마련하기 위해 노조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는 28일로 183일째 설립신고증을 내주지 않고 있다. 노조는 정부가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경태 위원장은 “당초 설립신고를 한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양지청은 ‘조만간 설립신고증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차일피일 미뤄졌다”며 “고용노동부에 문의해도 담당 지청 소관업무라며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류가 미비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요구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사이 공단은 노조 사무실을 빼라는 소송까지 제기했다. 선수협 시절 공단 내 사무실 사용을 묵인해 왔지만, 노조를 설립한다고 하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서울동부지법은 노조와 공단을 함께 불러 임대료를 받는 조건으로 화해조정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노조에 따르면 공단쪽 관계자는 사무실 임대료는 필요 없으니 그저 빼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경태 위원장은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공단은 선수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종종 ‘상품에 스크래치가 나면 어느 고객이 사겠느냐’며 몸 관리 잘하라는 말도 합니다. 노조설립은 이런 공단 태도를 바꾸고 사람으로 대접받기 위한 움직임이에요. 공단은 경기를 뛰는 선수가 있어 존재하는 기관인데, 주인공인 선수는 뒷전이고 상대조차 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이재 jael@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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