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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위협받는 노동권 ①]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노조도 만들 수 없더라”

기사승인 2020.10.14  07: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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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관 부딪힌 노조 조직화, 코로나 핑계로 교섭 회피하는 사용자

   
▲ 이상해씨가 세종호텔노조를 대신해 민주노총 아바타 집회에 참석했다. <노동과세계>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은 뒤흔든 지 8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백신도, 치료약도 없는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 유일했다. 단결과 단체교섭, 단체행동을 근간으로 하는 노동조합의 일상도 달라졌다. 매일노동뉴스가 비대면 방식으로 인한 노조활동의 변화를 살펴봤다.<공동취재팀>

지난달 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방귀대장 뿡뿡이’ ‘피카츄’ ‘라이언’ 등 여러 캐릭터 인형 50여개가 ‘단결투쟁’ 머리띠를 두르고 집회에 참여했다. 인형이 앉은 자리에는 ‘세종호텔노조’ ‘공공운수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 같은 노조 이름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벌 통과” “노조법 2조 개정”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이라고 적힌 피켓도 붙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주최한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서울지역 아바타 집회’ 현장이다.

당시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로 서울시에서는 10명 이상이 모이는 집회를 할 수 없었다. 이날 모인 인형 50개는 집회 현장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바타로 내보낸 것들이다. 구호를 외치고 투쟁 연설을 하는 것은 현장에 설치된 전화기와 스피커로 대체했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소리가 끊기거나 자주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이정옥 금속노조 임오파트너스분회장은 “회사의 무시와 억압을 견디다 못해 올해 2월 노조에 가입했는데 회사가 노조탈퇴를 회유하다 안 되니 조합원을 해고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노조에 가입할 즈음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분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이정옥 분회장은 “다른 노동자와 시민들의 연대를 원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며 답답해했다.

발 묶인 신규노조 조직화
파업 피하다 보니 길어지는 단체교섭


코로나19로 노조활동은 제약을 받았다. 사람을 만날 수도, 사람들을 모을 수도 없었다. 조직력이 있고 안정된 노조들은 화상회의나 모바일 투표,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처럼 비대면이 가능한 활동을 모색하면서 기존 활동을 대체해 나갔다. 문제는 가뜩이나 어렵고 힘없는 노동자들이다. ‘재난은 약한 곳부터 무너뜨린다’는 명제는 노조활동에도 통했다.

우선 신규노조 조직화 흐름이 끊겼다. 최근 2년간 상승곡선을 그렸던 노조 조직화 바람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한풀 꺾이는 양상이다. 정현철 금속노조 시흥·안산지역지회장은 “일반적인 노동상담은 예년과 비슷한데 신규노조 조직 상담은 크게 줄었다”며 “노조설립을 준비하던 몇몇 사업장도 회사 경영상태가 악화하고 사회적 분위기도 좋지 않다 보니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판단하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힘겹게 노조를 설립한 곳도 교섭과 쟁의행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8월2일 설립총회를 열고 출범을 알린 마트산업노조 코스트코지회는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하면서 단체교섭을 위한 노사 상견례를 “코로나19가 잠잠해진 이후”로 연기했다. 두 달을 기다린 끝에 지난 7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마리나파크 3층에서 노사는 공식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올해 2월 설립한 마트산업노조 이케아코리아지회도 코로나19로 교섭 날짜 잡기가 어려워져 비대면으로 교섭을 해야 했다.

11년 만에 임금동결 합의를 한 현대자동차 노사도 화상회의로 단체교섭을 했다. 3차 교섭까지는 노사 교섭위원 60명이 한 공간에서 협상을 하다가 4차 교섭부터는 울산공장 본관 중회의실, 울산공장 글로벌생기교육센터, 남양연구소 영상회의실로 인원을 분산해 화상회의로 교섭위원을 연결했다. 김용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선전홍보실장은 “(화상 단체교섭은) 노조 34년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사건인데, 솔직히 처음에는 교섭이 제대로 될까 우려가 컸지만 교섭 결과에서 드러나듯 비대면 교섭 방식은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교섭을 비대면 방식으로 한 현대차지부는 임금·단체협상투쟁도 예년과 달랐다. 조합원들을 한 곳에 모아 집회를 열 수 없다 보니 선전홍보 사업에 치중했다. 5월부터 현대차지부가 유튜브 채널 이름을 ‘유니콘TV’로 바꾸고 콘텐츠를 대폭 강화한 것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
 

‘▲ 노조법 2조 개정’을 요구하는 이브이가 집회 참석 도중 눈을 감고 있다. <노동과세계>

“코로나19 노동자 통제 쉬워졌다”
하청 비정규직, 임금삭감 우려 고용불안 높아도 집회조차 못해


비정규 노동자들은 현대차의 임단협 결과에 불만이 크다. 김현제 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장은 “자본과 정권이 코로나19를 핑계로 노동자를 통제하기가 쉬워졌다”며 “대공장 정규직노조가 임금을 동결해 버리면 그 밑으로 서열화된 하청사업장과 부품사들은 전부 다 최소한 동결 아니면 삭감으로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대기아자동차에 와이퍼를 납품하는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심각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지만 공장 밖으로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세계 2위 부품사인 일본 덴소가 출자해 만든 한국와이퍼는 2018년부터 신차에 들어가는 신규 물량을 받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는 회사의 신규 물량 수주 거부가 공장을 폐업하고 100% 비정규직 공장으로 만들기 위한 수순으로 판단하고, 지난달 11일 투쟁선포식을 열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로 인해 투쟁선포식은 공장 안에서 진행됐다. 조합원들은 공장 1층부터 3층까지 분산해 층마다 연결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구호 소리에 맞춰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다음주부터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집회를 열기가 쉽지 않아 조합원들이 각지에 흩어져 동시에 1인 시위를 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정현철 시흥·안산지역지회장은 “어느 때보다 파업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많은 사업장에서 교섭이 예년보다 길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농성을 하는 아시아나케이오 하청노동자들도 힘겹다. 김한별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부장은 “노조에 대한 정치적 혐오와 거리로 나온 노동자를 감염병의 매개로 보는 혐오감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이런 시국에 집회를 한다’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상급단체 간부들의 교섭 참가를 제한하는 사업장도 있다. 김영훈 공공연맹 조직처장은 “코로나19를 핑계로 사측이 외부인을 들일 수 없다고 상급단체 간부의 교섭 참가를 거부하거나,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일 때는 10명 이상 집합금지를 이유로 교섭을 연기하는 식으로 교섭 해태가 속출했다”며 “노동부에 항의해도 ‘정부 방침인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사측 편을 들어 답답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업장 노사분규가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올해 상반기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24건, 이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8만4천일이다. 올해 상반기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관련 통계를 낸 96년 이후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수치다. 1998년 외환위기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에 그친다.

‘참가자만의 리그’로 그치는 온라인 시위
사회적 파급력 높이는 새로운 활동방식 찾아야


코로나19로 손발이 묶인 노조활동 방식의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조간부 대부분은 “솔직히 답이 잘 안 보인다”고 답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에서 조직노동자는 한 발 비켜 서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변화에 둔감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노총의 한 노조간부는 “코로나19로 미조직 취약계층 노동자는 해고되고 사회안전망 밖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 반면 노동조합 힘이 강한 사업장은 비교적 안정적이기 때문에 노조가 굳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지 않아도 된다”며 “당면한 변화에 가장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대응을 하는 곳이 노조”라고 꼬집었다.

노조의 효능감 자체가 위기라는 진단도 나온다. 한국노총의 한 산별연맹 간부는 “교육도, 집회도, 회의도 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보니 노조활동 자체가 사라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 코로나19 이후 노조는 뭐하냐는 식의 문제제기가 있는데 앞으로 노조의 효능감이나 존재이유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흐름도 분명히 있다. ‘아바타 집회’를 기획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 곽승룡 사무차장은 “코로나19 이후 영상을 동시에 지켜보거나 게시판에 동시에 글을 쓰는 방식의 온라인 집회가 등장했지만 이슈화되지 못했다”며 “참가자들만의 시위로 그치고 있어 사회적 파급력을 높이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합원수만 24만명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 산별노조인 공공운수노조는 ‘조합원 총회’라는 방식으로 사회공공성 의제들을 모아 이슈화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공공성 강화와 노동자 고용·생계 보장을 위한 사회적 요구안 및 공동행동을 채택한다”는 안건을 놓고 지난달 14일부터 18일까지 전 조합원 투표를 진행해 11만1천469명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문재인 정부와 정책연대협약을 맺었던 한국노총은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손잡고 ‘노동존중실천 의원단’을 만들어 국회에서 노동문제를 이슈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집회는 못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제 일처럼 해결하도록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민주노총의 ‘전태일 3법 국민동의청원’ 운동의 성공도 주목받고 있다. 민주노총은 8월26일부터 9월19일 사이 국민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5명 미만 사업장까지 법을 적용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저력을 보였다. 광장에 10만명이 운집해 구호를 외친 것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둔 셈이다. 이런 흐름은 공무원·교사들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 입법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고들 한다. 코로나19 이후 노동조합도 달라져야 한다.

공동취재팀 : 김미영·이재·강예슬·정소희·임세웅·어고은 기자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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