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7일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가 과로사 추정 죽음을 맞이한 노동자를 기리며 택배차량 추모행진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잇따른 택배노동자 과로사 추정 죽음에 정부와 택배사들이 정책을 내놓았지만 택배업 종사자 부고는 계속 날아들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진택배 간선차 노동자 김아무개(59)씨가 또다시 과로사 추정 죽음을 맞았다. 나흘간 집에도 들어오지 못한 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CJ대한통운 간선차 노동자 A씨가 숨진 지 약 일주일 만이다.

2일 택배연대노조 충청지부(지부장 이복규)에 따르면 한진택배 간선차 노동자 김씨는 지난달 27일 오후 11시20분께 한진택배 대전허브터미널에서 차 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물건이 차에 실리는 것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응급실로 이송 중 숨졌다고 한다. 이복규 지부장은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주로 낮에 이뤄지는 운송·화물운송 업무를 해 왔고 야간에 간선차 작업을 시작한 것은 두 달 전”이라며 “돌아가시기 3주 전에 부인에게는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았지만, 딸과 사위에게는 ‘너무 힘들다. 다른 일을 구해야겠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간선차 노동자가 과로사 추정 죽음을 맞은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간선차 노동자는 택배 집배송 노동자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일하지만, 노동환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루 10시간 넘는 장시간·심야 노동 시달려”

로젠택배 간선차를 운행하는 최정선(55·가명)씨에게 10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 심야배송은 일상이다. 택배 집배송 노동자가 아침 분류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물건을 전해 주는 게 간선차 노동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지점(서브터미널)·대구허브터미널·이천허브터미널’ 노선을 고정적으로 맡고 있다. 부산지점에서 오후 9시에 물건을 싣고 출발하면 대구허브터미널을 경유해 이천허브터미널에 오전 6~7시께 도착한다. 경유지역에서 물건 상·하차 작업, 도착지에서 물건 하차 작업 시간을 모두 포함하면 최씨의 하루 근무시간은 10시간이 넘는다.

부산이 집인 최씨는 이천허브터미널이 도착지인 날은 차에서 쉬다 오후 7시30분께 배송을 출발한다. 또다시 대구를 경유해 부산지점에 오전 6~7시께에 도착한다. 물건 하차 작업이 모두 완료되는 시간을 기다린 뒤 차량을 주차하고 집에 오면 오전 11시정도다. 대기시간을 포함한 노동시간은 14시간으로 급증한다.

최씨는 “터미널 안에는 기사 4~5명이 쉴 휴게공간 말고는 없어 차에서 쉬거나 숙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물품이 하차되길 기다리다 보니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에 야간근무라는 노동자 건강장해 유해인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6개월간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 사이의 시간 중 작업을 월평균 60시간 이상 수행하는 경우”는 특수건강진단 대상인 건강장해 유해인자다.

“고정·유지비만 수 백만원
추가 노동 안 할 수 없어”


낮은 운임료는 간선차 노동자의 장시간·추가 노동을 부추긴다.

CJ대한통운 간선차 노동자 한지석(가명)씨는 “예를 들어 군포허브터미널에서 대전허브터미널을 오가는 고정간선을 기준으로 680만원(20일 기준*34만원) 번다”며 “기름값 250만원, 톨게이트비 50만원, 컨테이너박스 두 개 임대료 40만원, 지입료(운송사에 주는 수수료) 25만원 빼면 305만원 남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차 감가상각비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대부분 차량 할부금으로 150만원 정도를 부담한다”며 “남는 돈이 얼마 안 되니 추가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정된 노선을 운행하는 간선차는 대개 주 20일 근무로, 운송사는 월마다 운송료를 지급한다.

지난달 21일 숨진 CJ대한통운 노동자도 하루 10시간 넘는 접·이안 업무와 함께 용차 업무를 함께 수행했다. 용차는 화물 운송사가 추가물량을 처리하거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불러서 사용하는 영업용 차량을 의미한다. 간선차 노동자는 택배사와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운송사와 업무위탁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사회보험 적용은 물론, 모든 업무수행 비용을 자비로 지출해야 한다.

또다른 CJ대한통운 간선차 노동자 채석수(가명)씨도 “일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분들은 차량 할부금이 없다”라며 “1천만원 이상 매출을 내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아 힘든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노동계 “안전운임·산재 적용해야”

정부와 택배사가 노동자, 시민·사회단체 성화에 못이겨 내놓은 대책은 간선차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19일 CJ대한통운·한진택배 등 택배사 주요 서브터미널 40곳·대리점 400곳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긴급점검 계획을 밝혔다. 또 CJ대한통운을 시작으로 한진택배와 롯데택배는 분류작업 인력 투입, 연간 주기적인 건강검진 실시, 산재보험 적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과로사 예방 대책을 내놓았다.

이복규 택배연대노조 충청지부장은 “택배 집배송 노동자는 본인이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입직신고를 하면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 되지만 간선차 노동자는 대상이 아니다”며 “간선차 노동자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화물노동자 중 안전운임이 적용되는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운반차량·안전운송원가가 적용되는 철강재·위험물질을 운송하는 일부 노동자만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다.

박귀란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직국장은 “택배 간선차 일은 심야에 이뤄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운행조건이 좋지 않은데, 다른 업무와 겸하는 경우 상황이 더 좋지 않다”며 “카고 품목에 대해서도 컨테이너나 시멘트처럼 안전운임제를 도입해 운송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는 화물차 운송료 산정에 근거가 될 수 있는 ‘화물자동차 안전운송원가’를 고시하고 있지만 강제력은 없다.

박 조직국장은 “간선차 노동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시간 규제도 전혀 없는 상태”라며 “노조법을 개정하고 사실상 노동시간이나 물량·운임을 결정하는 원청이 책임을 지고 나와 교섭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