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경덕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가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고성은 없었다. 여야는 정책을 제안하고 대안을 주문했다. 재산 형성과 병역, 논문표절 같은 도덕성 논란은 제기되지 않았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이뤄지는 부처 업무보고 때와 분위기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연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풍경이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위장전입·논문표절·병역 등 7대 인사원칙에 어긋나는 점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고,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비리 얘기를 하면 서로 민망한데 그렇지 않게 살아 줘서 고맙다”고 평가했다. 안 후보자는 의원들의 질의에 다소 소극적으로 임하면서도 플랫폼 노동에 쏠리는 청년을 보호할 방안, 사내하청 고용승계 같은 어려운 질문에는 “자세히 모르는 내용”이라며 “공부를 더 하겠다”고 솔직히 답했다.

임명되더라도 임기는 1년
‘이재갑 노동부’ 정책 계승할 듯

안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되더라도 임기는 1년가량에 불과하다. 질의에 앞서 이뤄진 모두발언 내용에 비춰 보면 ‘안경덕호의 노동부’는 이재갑 장관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장관이 되면 △고용상황 개선 △청년 등 일자리 확대 △안전한 일터 구축 △노동 기초질서 확립 등 네 가지를 핵심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취업지원 제도를 안착하고 고용보험 단계적 적용을 차질 없이 준비한다, 청년 일자리를 위해 신기술 분야 인재양성 투자를 지속·확대하고 산업구조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 탈락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체계를 마련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준비를 하고 산업안전보건본부·청 설립을 준비한다’는 세부항목을 제시했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안착과 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감독역량 집중, 플랫폼 노동자 보호대책 수립과 입법을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자는 삼성에버랜드 유령노조 봐주기 논란에는 유감을 표했다. 이마트 상품권 수령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두 사건의 해명을 요구하는 윤준병 의원 질의에 그는 “(유령노조는) 당시 증거 등 구체적 범죄행위 확보가 어려웠다”며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 대해 상당히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을 앞둔 2011년 초 에버랜드가 유령노조를 설립해 다른 노조 설립에 대응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금속노조 삼성에버랜드지회(현 삼성지회)는 10여년간 제대로 교섭도 못 하는 등 노조활동에 제약을 받아 왔다. 안 후보자는 당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으로 해당 사건을 담당했다. 지회는 안 후보자의 ‘유감’ 발언에 대해 “피해 당사자인 지회 조합원들에게 사과한 것도 아니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유감이라는 말로 둘러댔다”고 비판했다. 서비스연맹도 성명을 내고 “2011년 이마트가 작성한 명절 선물제공자 리스트에 안 후보자 이름이 명시돼 있다”며 “후보자는 받은 적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관계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적극 검토”

여야는 산재예방 대책과 관련해 노동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안 후보자는 산재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방지책을 만들기 위해 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장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필요한 정보는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적극 검토하겠다”고 수용의사를 피력했다. 같은 당 윤미향 의원이 택배 저상차량 이용과 수레배송이 택배노동자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자 “우려를 알고 있다”며 “실태를 살펴보고 전문가들과 대책을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김웅 의원은 간호사가 업무를 위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뒤 부작용을 겪으면 신속하게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는 일반 국민의 백신 부작용과 관련해 질병관리청 역학조사 후 인과관계를 따져 보상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김 의원은 “업무를 위해 백신을 맞는 경우라면 백신 부작용이 업무로 인해 생긴 질병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이 맞다”며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부작용을 업무상질병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신속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 후보자는 “간호사(간호조무사) 3명이 산재신청을 한 것으로 안다”며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기업 경영진이 산재예방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노동부가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았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재계 민원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이를테면 쿠팡 안전보건확보 의무는 김범석 의장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자는 “(김범석 의장이 쿠팡의)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라고 생각한다”며 “모든 사업장에서 법체계가 잘 작동하도록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혁신을 표방하는 플랫폼 업체들은 실제 열여섯 살 사장님을 만들어 4대 보험을 미적용하고 20% 내외의 중간수수료를 받아 가며 노동착취에 앞장서고 있다”며 “중간착취를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되고 원가를 공개하도록 하든지, 지도·감독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당 안호영 의원은 전기제품 수리기사·가스안전점검원 등 가정을 방문해 일하는 노동자가 겪는 과도한 감정노동과 폭언·폭행을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이들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 후보자는 “플랫폼 실태에 관심을 갖고 챙기고, 공정계약 문제도 살피겠다”며 “방문노동자를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보호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경사노위에서 유급병가·기후위기 논의할 듯
5명 미만 사업장 근기법 적용 논의 본격화 전망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역할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자는 직전까지 경사노위 상임위원을 지냈다. 유급병가가 경사노위 의제로 올라갈 것이라는 안 후보자 답변이 눈에 띈다. 그는 일용직·단시간·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어도 생계를 위해 검사받지 못하고 일할 수밖에 없다는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적에 “보건복지부가 상병수당 도입을 준비하고 있고 노동부도 (유급)병가에 대한 연구용역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안 후보자는 “아프면 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며 “가능하면 올해 내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논의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이재갑 장관은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중 안전망 강화 부문의 정부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노동법 분야의 상병휴가(유급병가)와 관련해서는 검토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사이 노동부 입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안 후보자는 고용보험료율 인상과 기후위기 대응 의제도 경사노위 대화를 통해 의견을 모으겠다고 답했다.

5명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문제는 안 후보자가 처음으로 추진하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1차 산업 및 4인 이하 사업장 근로시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근기법에서 배제된 5명 미만 사업장도 주 52시간제·연장근로 가산수당·연차유급휴가 정도는 적용할 여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기법 일부 적용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같은 내용의 근기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 의원이 근기법 개정 의견을 묻자 안 후보자는 “5명 이하 사업장 근로조건이 열악해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며 “근로조건 실태, 영세사업장 부담 정도, 법의 현장 적용 가능성은 어떨지 종합적으로 고려할 게 많아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노·사·전문가와 확대 적용하는 쪽으로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했다.

페르노리카코리아 노사갈등 도마에

인사청문회는 노사갈등 사업장 노사 대표가 증인과 참고인으로 출석하는 이색 광경도 연출됐다. 장 투불 페르노리카코리아 사장이 증인으로,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노조 위원장이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 사업장은 노조탈퇴 종용과 노조위원장 부당인사 등으로 5년째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외국기업으로부터 자국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노동부라면 문을 닫아야 한다”며 “부당노동행위·부당해고 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장 투불 사장이 7월 인사발령으로 한국을 떠날 것으로 전해졌는데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 장 투불 사장 출국금지 조치를 해야 한다”며 “부당노동행위와 직장갑질, 반인권적 탄압 행위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후보자는 “고소고발된 사건을 빨리 조사하고, 저희가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가 밤 늦게까지 이어지면서 환노위는 안 후보자에 대한 청문경과보고서는 다시 전체회의를 소집해 채택하기로 했다. 6일로 예정돼 있다. 안 후보자는 장관 임명 후 다음주께 양대 노총을 찾아 협력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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