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왼쪽부터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의 정병천 지부장 당선자와 조경근 지부장, 김형균 정책기획실장이 16일 오전 통상임금 소송 상고심 선고가 끝난 뒤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며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들어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신의칙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일시적인 경영악화만이 아니라 기업의 계속성과 수익성, 경영상 어려움을 예견하거나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네 가지 구체적 근거를 제시했다.

정기·명절상여금, 통상임금 미포함에 ‘소송전’
‘경영상 어려움 초래’ 여부 쟁점, 엇갈린 판결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 노동자 정아무개씨 등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신의칙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회부했다가 소부로 돌려보낸 이후 나온 결과다. 소송이 시작된 날로부터는 9년 만이다.

현대중공업은 노동자들에게 짝수 달마다 정기상여금 700%와 명절상여금 100%를 지급해 왔다. 회사는 매년 통상임금에 일정비율로 계산된 격려금 및 성과금 등을 지급했다. 그런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이를 제외했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2009년 12월~2012년 11월 사이의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수당의 차액을 지급해 달라며 2012년 12월 소송을 냈다. 회사가 지급해야 할 금액은 4천800억원(노조 추산)~6천억원대(사측 추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의 쟁점은 노동자들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될지 여부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하거나 회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 임금 추가분을 소급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사측 대리인은 ‘신의칙 위반’을 주장했다. 사측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합의 또는 관행을 근로자들이 위반했다”고 항변했다.

1심은 회사의 ‘신의칙 위반’ 주장을 배척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2014년께 경영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점은 인정되지만, 이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처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상여금의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 부분도 모두 인정했다.

반면 2심은 명절상여금을 제외한 나머지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도 사측의 ‘신의칙 위반’ 주장을 받아들였다. 2심은 “노동자들이 미지급 법정수당의 추가지급을 구하는 것은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라며 회사에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운다고 판단했다.
 

▲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대리한 이상수 변호사(법무법인 우성 대표·사진 왼쪽 가운데)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집행부가 16일 오전 통상임금 소송 상고심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우성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홍준표 기자>
▲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대리한 이상수 변호사(법무법인 우성 대표·사진 왼쪽 가운데)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집행부가 16일 오전 통상임금 소송 상고심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우성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홍준표 기자>

대법원 “경영악화 극복 가능하면 신의칙 배제”
노동자 “사필귀정” 경총 “막대한 피해 우려”

그러나 대법원은 신의칙 적용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며 2심을 다시 뒤집었다. 먼저 노동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는 ‘기업운영을 둘러싼 여러 사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시적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들어 노동자들의 청구를 쉽게 배척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구체적으로 현대중공업의 경영지표가 2012년까지 전반적으로 양호했다가 2013~2014년 악화했지만, 회사가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내외 경제상황 변동에 따른 위험은 오랫동안 대규모 사업을 영위해 온 기업이 예견할 수 있거나 부담해야 할 범위 내에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회사의 경영상태는 2013년 4월 이후 급격히 악화했다가 사실심 변론종결 무렵에는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다”며 “원심으로서는 기업의 계속성이나 수익성, 경영상 어려움을 예견하거나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고려해 청구의 인용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이날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을 적용받을 3만여명의 노동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며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로 노동자들에게 지불해야 할 체불임금 4천800억원 때문에 회사가 경영위기에 빠진다는 것은 억지 주장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이상수 변호사(법무법인 우성)는 “사필귀정이다. 경영상 어려움 때문에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은 상식 밖의 일”이라며 “대법원이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당사의 입장과 차이가 있어 판결문을 받으면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충분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총도 “대법원이 신의칙을 부정해 노사가 합의한 내용을 신뢰한 기업이 막대한 규모의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이번 판결로 하급심의 엇갈린 판단이 정리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은 신의칙 적용을 배제해 노동자 3천500명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같은해 한국지엠 노동자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선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이유로 신의칙을 적용해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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