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쿼터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조선업계 수요가 많은 도장공과 용접공은 각각 연 300명·600명만 특정활동(E-7) 비자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비자 발급 지침을 개정해 쿼터제를 없앴다. 단 업체당 외국인 노동자 비율은 20%를 넘길 수 없다.

개정된 지침은 19일 바로 시행되는데 숙련노동자 단절로 몰락한 일본의 조선업 전철을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 인력 증가가 중대재해 발생을 높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 연 4천428명 고용 가능”

산업통상자원부와 법무부는 이날 “활황기를 맞은 조선 분야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특정활동(E-7) 비자 발급 지침을 개정, 시행한다”고 밝혔다. 조선업계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방자치단체와 조선업계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E-7 비자는 법무부 장관이 전문적인 지식·기술 또는 기능을 가진 외국인력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정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비자다. 용접공·도장공, 전기공학·플랜트공학기술자 4개 직종이 E-7 비자를 받아 조선업에서 일할 수 있다.

지난 2월 조선 7개사와 사내협력사(335곳)가 고용한 내국인 노동자가 2만2천142명인 것을 감안하면 용접·도장 업무에 고용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최대 4천428명이다.

산자부는 도장공에 한해 운영하던 국내에 유학온 외국인에 대한 특례제도는 전기공·용접공으로 확대한다. 이공계열 유학생은 기량검증을 통과할 경우 경력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도장공·전기공·용접공으로 일할 수 있다.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의 80%를 임금으로 지급하는 임금요건은 전기공과 도장공에서 용접공으로 확대 적용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사고 우려에 산자부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작업상 안전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입국 후 1년 이내 사회통합프로그램(한국어·문화·사회 교육) 이수 요건을 도입하겠다”고 보완책을 내놨다. 다만 2024년 상반기까지 적용 유예된다.

정부, 한국어교육 의무화 2년 유예
노동계 “죽더라도 배는 만들라는 것”

조선업이 오랜 불황기를 끝내고 활기를 찾으면서 추가인력을 확보가 필요하다는 데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은 독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먼저 닥칠 문제로 산업재해 증가가 꼽힌다. 김태정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내국인 노동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면서 소통의 문제로 중대재해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언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여 작업장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선업 내 다단계 하청구조가 중대재해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지난 3월 현대중공업 노사는 2016년 분사했던 현대중공업모스(MOS)를 합병하기로 합의했다.

김 국장은 “작업상 안전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 요건을 도입한다면서 2022년부터 2년을 유예한다는 것은 정부가 나서서 사람들 죽어라, 죽더라도 배는 만들라고 떠미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지난 2월 현대중공업 하청사에 외국인이 952명 있었는데 477명은 중국 국적자로 언어 소통이 되는 중국동포”라며 “(외국인력 도입은)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세계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중대재해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 확대정책을 발표한 이날도 울산조선소에서 신호수 업무를 수행하던 정규직 노동자가 44톤 지게차 앞바퀴에 양 다리가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재해자는 암 수술 후 복귀한 지 하루 만에 사고를 당했다.

“값싼 노동 활용하면 숙련인력 단절”
일본도 외국인력 확대 뒤 내리막길

외국인 노동자 비율 증가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조선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병조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실장은 “단기 이주노동자를 채용하게 되면 국내 숙련기술자를 양성하지 못해 (기술인력의) 단절현상이 발생한다”며 “일본도 이 과정을 거치면서 몰락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연구자는 “일본 조선업이 망해 가는 이유는 2000년대 초반 이후 일본 내 기능인력 부족, 외국인 고용 확대에서 시작해 숙련기술 수준 저하로 이어진 점이 크다”며 “단기적 대응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저임금 외국인 기술인력 활용은 숙련유지 차원에서 도움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연구자는 “숙련기능직이 된 외국인 노동자가 자국으로 돌아가면 한국 조선업 기술력 유지에 이번 대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노동계는 일자리 질을 개선해 노동자 유입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병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실장은 “지금 조선 분야 인력수급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강한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대우를 자본가들이 하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라며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값싼 외국인 노동자 인력을 해외에서 충원해 일을 시키겠다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태정 정책국장은 “인력난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 인력난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할지 정부와 자본은 명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현재 조선시장의 비정상적인 고용시장, 하청과 물량팀의 3중 고용구조를 정규직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속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주노동자 확대를 통해 조선산업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단견을 바꾸기 위해서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조연대의 투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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