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는 지난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재택전담집배원 경력채용에 관한 차별 진정 제기 기자회견을 했다. <정소희 기자>

2012년부터 경남지역에서 재택위탁집배원으로 일한 김미정(가명)씨는 최근 ‘우정 9급(집배) 공무원 경력경쟁채용시험’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벌써 세 번째 불합격 통보였다. 지난해 두 번, 올해 한 번 응시했는데 10년 경력을 가진 김씨를 대신한 합격자는 늘 20~30대 남성이었다. 합격자들의 경력은 길어야 6개월 정도였다.

2019년 대법원 판결로 지난해부터 공무직이 된 김씨는 여전히 공무원의 ‘벽’을 느낀다. 수당을 받고 연장근로를 하는 공무원 동료들과 달리 김씨는 상사가 허락해 주지 않아 수당이 발생하지 않을 만큼만 연장근로를 했다. 상사의 핀잔 때문에 연차휴가도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 그래서 경력경쟁채용시험에 꼭 붙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12일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공무직이라서 차별받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며 “여자라서 자꾸 경력채용시험에 떨어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경력경쟁채용시험이라더니 10년 경력 무용”

법원에서 우정사업본부 근로자라는 판결을 받은 뒤 공무직으로 전환된 이들 여성 재택위탁집배원이 “성별을 이유로 경력경쟁채용시험에 낙방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생긴 재택위탁집배원은 우정사업본부와 도급계약을 맺고 아파트 단지 등 지정 구역에 우편물을 배달해 왔다. 대부분 여성노동자로 하루 4~7시간 정도 일하고 시급을 받았다. 재택위탁집배원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2019년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이들은 지난해 공무직으로 전환됐다. 현재는 우체국에서 하루 평균 8시간을 일한다.

문제는 이들이 공무직이라 공무원인 집배원과 비교해 복지제도나 급여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김미정씨처럼 공무원 경력경쟁채용시험에 응시하는 재택위탁집배원이 많지만 합격률이 높지 않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본부장 최승묵)에 따르면 재택위탁집배원의 평균 경력은 10년 정도다.

김미정씨는 “여섯 번 만에 혹은 네 번 만에 붙은 사람도 알고 있는데 이들도 대부분 남성들을 합격시킨 후 채용된 것으로 안다”며 “그나마 합격한 사람들도 ‘더 이상 뽑을 남성이 없어서 우리를 붙여 줬다’고 자조하기도 한다”고 증언했다.

우정사업본부의 집배공무원 경력경쟁채용시험 공고문에 따르면 관련 분야 경력은 1차 시험인 서류전형 단계에서만 우대조건으로 적용된다. 민주우체국본부는 2차 시험이자 최종시험인 면접시험에서 중장년 여성인 재택위탁집배원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관련 분야 경력을 평정요소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나 같은 경우는 입사한 지 이틀된 청년 남성과 경쟁해 떨어지기도 했다”며 “이럴 거면 경력경쟁채용시험이라는 이름은 왜 붙이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신입 남성에 밀려나는 평균 10년 경력 여성”

지난 10일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 진정 사실을 알린 민주우체국본부는 이들이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고도 우정사업본부 내 다른 집배원처럼 공무원으로 전환되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정사업본부는 2018년 2천여명의 상시계약 집배원·택배원을 공무원으로 전환했지만 250여명(2019년 기준)의 재택위탁집배원은 공무원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다.

최승묵 본부장은 “재택위탁집배원은 오랫동안 일한 만큼의 경력을 인정받고 대우받아야 하지만 신입으로 들어온 이들과 경쟁채용에서 밀려나고 있고 우정사업본부는 아무런 이유 없이 공무원 전환을 회피하고 있다”며 “인권위는 그간 지방우정청에서 벌어진 채용이 올바르고 공정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