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지회장 구자겸)가 28일 오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 선고에서 승소가 확정된 직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만세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11년여 만에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확정받았다. 철강업계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1년 5월 최초 소송이 제기된 후 대법원 결론이 나오기까지 11년2개월이 걸렸다. 포스코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해야 할 의무가 부여됐다. 현대제철을 비롯한 동종업계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첫 소송 제기 후 59명 대법원 판단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이흥구 대법관)는 28일 오전 전·현직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59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정년이 지난 노동자 4명(1·2차 각 2명)의 청구는 구제이익이 없다며 각하했다.

이날 선고된 사건은 1차(15명)·2차(44명) 소송 2건이다.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11년 5월과 2016년 10월 각각 포스코에 직접고용 의무가 있다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2년을 초과해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사용사업주는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들은 1987~2014년 사이에 입사해 광양제철소의 냉연·열연 공정과 관련해 크레인을 이용한 코일 운반과 정비지원 등 업무를 담당해 왔다.

노동자들은 하청 소속이지만 사실상 포스코의 지시를 받아 근무했다고 주장했다. 포스코 직원의 지시에 따라 크레인 작업을 수행했고, 포스코가 직접 작업 내용·인원·일정 및 근로시간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특히 생산공정 관리를 위해 사용되는 전자시스템인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를 통해 포스코가 원·하청 직원 모두에게 작업지시를 했다고 강조했다.

‘불법파견’ 원심 확정, 정년도과 4명 각하

1심은 두 사건 모두 포스코측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2015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소송의 대법원 판결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직접 근로관계가 아니더라도 하청노동자는 파견법상 근로자파견관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포스코 1·2차 사건은 대법원 판결 이후인 2016년과 2019년에 항소심 결론이 나왔다. 하청이 원청의 검증을 받은 작업표준서에 따라 작업을 수행했고, MES를 통해 업무 지시를 받았다는 점이 불법파견의 근거가 됐다. 이 밖에 △실질적인 원청 사업 편입 △원청의 지휘·감독 △크레인 운전의 전문성·기술성 부족 등도 모두 인정됐다. 나아가 하청에서 해고된 노동자 일부도 포스코의 직접고용 의무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도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포스코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소송 중 정년이 지난 노동자들은 소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했다. 변론 종결 당시 정년이 지나면 해고무효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한 2004년 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이번 사건은 파견근로자도 이에 해당한다는 최초 사례로 남게 됐다.

▲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지회장 구자겸) 조합원들이 28일 오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지회장 구자겸) 조합원들이 28일 오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전자시스템 MES, 지휘·감독 인정 첫 판결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제조업체에서 활용되는 MES가 지휘·감독 시스템이라고 판단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사용자측은 주로 MES가 업무 발주와 검수를 위한 시스템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노동자들이 MES를 통해 지시받아 작업을 수행했고, 전달된 작업 정보는 사실상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라고 판단했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정기호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도 이날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MES 정보가 구속력 있는 지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최초의 판결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제철공장 근로자파견에 관한 최초의 판결로서 ‘리딩 케이스’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변호사는 “철강 제조 공정은 도급관계가 불가능한 근로자파견이라는 본질을 꿰뚫어 본 판결로서 후속 사건이나 현대제철 사건에서도 바로미터가 될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또 크레인 운전과 압연 공정이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연속공정으로 판단한 데에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7차까지 제기된 후속 사건의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3·4차 사건은 지난 2월 항소심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4~7차 사건은 1심에서 심리 중이다. 총 808명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또 현대제철 순천공장 하청노동자들도 지난 22일 1심에서 승소해 포스코 판결이 현대제철 사건의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긴장감 속 방청에 선고 뒤 ‘환호’

포스코 사건은 지난해 12월 선고가 예정됐지만, 당일 연기된 끝에 선고됐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지난 6월 대법원에 선고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이례적인 대법원의 선고 변경에 노동자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대법원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포스코의 상고 기각 결정이 나오자 노동자들은 환하게 웃었다. 선고가 끝나자 “우리가 이겼다” “실감 나지 않는다” 등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불법파견 판결 확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구자겸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장은 “그동안의 차별을 떠올리면 감정이 북받친다”며 “포스코가 50년 넘게 노동력을 착취한 보상으로 이제라도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소송을 처음부터 주도한 양동운 지회 법률국장은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선고 전날 긴장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긴 기간 동안 견뎌 준 동료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다만 선고가 연기돼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12월31일 정년을 맞아 이날 각하 판결을 받았다. 애초 대법원 선고일은 지난해 12월30일이었다.

판결 엇갈린 평가, 학자금 미지급 논란도 ‘불씨’

노동계와 경영계의 평가는 엇갈렸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당연한 결과를 얻어 내기까지 11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이 개탄스럽지만 환영한다”며 “포스코를 넘어 현대제철 등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과 고용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가 찍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경총은 “도급계약의 성질, 산업생태계 변화, 국내 노동시장의 현실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유사한 판결이 이어질 경우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일자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을 인정했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 포스코와 협력사들이 출연한 공동근로복지기금이 지난해 소송을 진행 중인 직원에 대해 자녀 장학금을 유보한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내하청 노동자 374명이 자녀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지회는 장학금 미지급은 불이익 처우라며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시정 진정을 신청했다. 이와 관련해 양동운 국장은 “1천만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받지 못해 소송을 포기한 조합원들이 늘고 있다”며 “이번 판결과 인권위 결과에 따라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2011년 첫 소송을 주도한 양동운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법률국장은 28일 열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정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포스코의 근로자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양 국장은 지난해 12월31일 정년을 맞았다. <홍준표 기자>
▲ 2011년 첫 소송을 주도한 양동운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법률국장은 28일 열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정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포스코의 근로자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양 국장은 지난해 12월31일 정년을 맞았다. <홍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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