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은솔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사람과산재)

솔직히 차선을 넘나들며 위험천만하게 달리는 배달기사는 내게 짜증의 대상이었을 뿐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배달노동자로부터 상담전화가 왔다. 배달 중 사고가 크게 나서 산업재해 신청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업무상 사고는 굳이 노무사 도움 없이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재해자는 “그건 알지만, 본인이 신호위반을 하다가 발생한 사고라 힘들 거 같다고 사건을 맡아달라”고 했다.

신호위반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신호위반과 같은 중과실은 범죄행위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2항에 따라 원칙적으로 산재로 인정받을 수 없다. 폭우로 앞을 볼 수 없다거나, 약을 복용해 졸린 상태였다는 등 아주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승인받기 어렵다. 이 재해자의 경우 본인 과실 100%에 아주 특별한 사정이라고 볼만한 사유가 없었기에 진행이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이 없다고, 신청이라도 꼭 해보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사고경위는 이렇다. 음식점 두 군데를 골라 배정받은 상태였는데, 픽업시간이 5분 남은 업체가 강제로 배정되었다. 재해자가 있던 장소에서 13분 남짓 떨어진 곳이라 거부하고 싶었지만 단톡방에서 압박이 계속되고, 수행하지 않으면 욕설이 담긴 전화까지 오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강제배차를 받자마자 마음이 급해져 빨간불인데도 출발했고 사고가 났다고 했다. 재해경위를 듣고도 내 판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자신의 판단으로 신호위반을 한 것은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자료를 검토하며 내 생각은 완전히 변했다. 재해자가 일했던 배달대행사의 카카오톡 단톡방을 보니 더 빨리, 더 많이 배달할 것을 강요하는 육두문자가 난무했다. 배달앱에는 ‘즉시 7분’이라는 문구가 정신없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대행사는 배달기사들의 범법행위를 묵인하는 것을 넘어 조장하고 있었다. 점주가 요청한 시간 내에 가지 못해 가맹점을 잃을까 봐 배달기사들을 미친 듯 압박하는 것이다. 신호위반, 과속, 앞지르기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픽업시간 내에 갈 것을 아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배달라이더 5천62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6%가 배달 재촉을 요구받았고, 그들 중 50.3%가 교통사고를 경험했다고 한다. 반면에 재촉 경험이 없는 라이더는 23.0%만이 사고를 경험했다. 전체 응답자 중 배달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비율은 47%로 거의 절반에 달했다. 특정 직종에서 특정 사고를 두 명 중 한 명꼴로 당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토바이가 자동차보다 상대적으로 위험하니 어쩔 수 없다고? 배달노동자들이 전반적으로 준법정신이 낮다고? 돈 더 벌려고 자기가 선택한 거라고? 아니면 그 노동자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과연 정말 그렇게만 바라볼 일일까.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배달기사 개인의 일탈이다. 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의문은 남는다. 범법행위를 방조 심지어 조장하고, 그로부터 빠른 배송과 가맹점의 신뢰를 얻었음에도, 사고가 난 후 “조심 좀 하지”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배달대행사는? ‘즉시배송’ ‘바로배송’ 등 엄청난 속도를 약속하며 배달기사들의 위치까지 고객에게 제공하는 플랫폼업체 책임은? 기본급 전혀 없이 실적급 100%로 이뤄지는 임금구조는? 전속성을 요구하며 배달기사에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매우 느슨하게 만든 법은? 그리고 이러한 산업구조에 너무 익숙해져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빠른 배송을 기대하며 배달을 시켰던 나는 정말 일말의 책임도 없는 것일까?

최초요양신청, 심사청구 모두 불승인을 통보받고 근로복지공단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그는 “다양한 주장을 하셨지만, 대행사랑 관계, 배송시간 압박을 특별한 사정으로 인정하면 배달노동자들 전부 다 산재”라고 말했다. 그게 더 슬펐다. 절대다수의 배달노동자들이 폭언, 욕설이 담긴 배송 재촉을 받고 그로 인한 사고의 위험성이 2배 이상 높아진다는 것이, 이 상황이 아주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 너무나 만연한 일이라는 사실이. 합정역 앞 카페에서 글을 쓰다 사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잠깐 사이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저들 중 반절은 교통사고를 경험했고, 앞으로 더 많이 경험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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