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거리의 변호사’ 4·10 총선에 출마한 권영국(60·사진)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권 후보는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SPC 노조파괴 의혹 등 각종 노동 사건에서 법률가이자 ‘활동가’로서 목소리를 내 왔다. 지난 20일 금속노조 투쟁선포식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 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2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그는 2022년 8월 허영인 SPC 회장 자택 앞에서도 물구나무를 서 주목을 받았다.

‘노조 울타리’가 없는 노동자들을 위한 대변인 역할도 자처한다.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 노동자와 고 강보경 DL이앤씨 일용직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 이후 원청 사과와 합의를 이끌었다.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참여하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도 힘을 보탰다.

이번 출마는 세 번째 도전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용산 참사’ 책임자인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무소속 후보로 연고가 없는 경북 경주에 도전장을 냈다. ‘험지’에서 15.9%의 득표율로 선전했지만 낙선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재차 경주에 정의당 소속으로 출마했지만, 11.5% 득표에 그쳤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법무법인 두율에서 권 변호사를 만났다.

노조 조직하다 해고 “떠나지 않겠다”
파업 노동자에 “사용자 대리 안 해” 약속

- 1999년 사법시험 합격 뒤 20년 넘게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동’ 국회의원이 되려는 이유는.
“노동 활동을 하면서 두 가지 약속을 했다. 포항제철공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1985년 경주 방위산업체 풍산금속에 입사해 노조를 조직하려다 1988년 해고됐다. 노조 추진 회의 과정에서 안강공장의 노동자가 한 말이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 있다. 그는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함께 할 수 있나’라고 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러고 이렇게 말했다. ‘먼저 가라고 하지 않으면 떠나지 않겠다’ 이 약속을 30년 가까이 지키고 있다. 두 번째는 2006년 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 파업 때의 기억이다. 대학 총장과 학생들까지 조합원들을 공격해서 파업 4개월 무렵부터 생계가 어려워지고 다들 지친 상태였다. 힘이 돼 달라고 해서 간 자리에서 ‘이 시간 이후로 결코 사용자 대리를 하지 않겠다. 동료들 손을 잡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노동자만 대리한다. 이 약속은 국회에 들어가도 유효하다.”

- 비례대표로 다시 국회의원에 도전장을 낸 이유는.
“처음에는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을 언급하면서 독자 진보정당인 녹색정의당이 위험해질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녹색정의당이 ‘침몰’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당에서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며 ‘침몰하고 있는 배를 두고 떠난 세월호 선장처럼 되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출마를 결심했다. 불신받고 있는 당의 ‘노동 중심성’을 바로 세우고 노동정치와 기후정치를 양대 축으로 양당 정치에서 소외된 ‘을’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정의당이 그동안 비판받았던 부분에 동의하고 출마한 것은 아니다. 당의 정체성에 대해 논란이 일었던 부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 녹색정의당 지지율이 낮다. 당이 가야 할 길은.
“정의당 강령을 보면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당’ 이런 표현이 들어 있다. 당의 태생이 노동자를 주체로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90% 이상이 사실상 노동자이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이 당의 핵심적인 정체성이 돼야 한다.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이어져 왔던 부분이다. 그런데 21대 총선 이후 당이 페미니즘 논쟁 등에 휩싸이며 마치 노동 문제를 소홀히 한다는 인식들이 퍼지게 됐다. 변호사 활동가로 몇 년간 거리에서 노동자들과 투쟁하다 보니 ‘현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본으로 돌아가 ‘노동 현장’에 있어야 한다.”

“현장 고달픈데 당은 뭘 했나 지적, 반면교사로”
“임금 불평등 심각, 노동자 대변할 정치인 절실”

- 후보 출마 이후 당원이나 주변 반응은 어땠나.
“내부 경선할 때 3일간 당원들에게 400통 정도 전화를 했다. 당원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삶의 현장은 힘들고 고달픈데 도대체 당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문제 제기를 강하게 하는 당원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당에 굉장히 실망했다면서도 제 전화를 받고는 투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녹색정의당에 채찍을 가하면서도 아직 당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경선 과정에서 많이 느꼈다.”

- 결국 ‘현장 중심의 노동정치’가 절실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노동’이 국회에서 왜 필요한가.
“우리 사회의 가치 중 ‘노동의 가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회가 가장 건강한 사회기 때문이다. 불로소득으로 부자가 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자산 불평등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노력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사회적 지위나 생활 수준이 정해지기 때문에 정말 잘못된 사회다. 건강한 사회로 만들려면 노동의 가치를 국회에서 세워야 한다.”

권영국 녹색정의당 후보가 금속노조 투쟁선포식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 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 <권영국 후보>
권영국 녹색정의당 후보가 금속노조 투쟁선포식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 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 <권영국 후보>

- 입법이 필요한 ‘노동 법제’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위기는 ‘불평등’이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나아가 노동자 내부의 격차도 점점 벌어져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건널 수 없는 강이 돼 버릴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간 차별이 심각하다. 노동 격차는 교육 불평등, 저출생 문제로 귀결된다. 우선 ‘임금 불평등’을 줄이는 해결책 모색이 시급하다. ‘동일임금 동일노동’ 가치를 산업별 차원에서 적극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예컨대 ‘임금 격차 위원회’ 같은 제도를 만들어 국회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산별교섭을 제도화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 지난 23일 노동선거대책본부를 발족하고 본부장을 맡았다.
“노동으로부터 떠나 버린 국민들의 마음을 회복해 달라는 의미에서 노동선대본을 꾸리고 상임노동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삶의 현장은 고통인데도 원내에 안주하는 듯한 당에 대한 실망감이 넘쳐났고, 현장에 가닿지 못한 당의 정체성에 대한 질책을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이라는 당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에서 시작했다. 각 산별노조와 노동자들이 참여한다.”

- 유권자의 90%가 노동자다. 유권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동자를 진정으로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보수정당에 부탁할 수밖에 없다. 또 의원은 끝까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의원은 배지를 달고 권력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만 봤다. 국민들이 의원을 잘못 길들인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의 편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을 결정하는 역할은 국민들이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모든 규제를 풀고 노동자를 범죄집단으로 만들어 억압하는 행태만 보인다.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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