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지급결제를 둘러싼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 갈등으로 번졌다. 개정안은 사실상 금융위에서 만들어 윤 위원장이 발의한 안이다.

현재 상황은 개정안에 발끈한 한국은행이 금융위의 잘못된 경제개념을 꾸짖는 모양새다. 김영근 한국은행노조 위원장은 18일 금융노조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주제로 개최한 금융노동포럼에 참여해 “빅테크·핀테크 기업 내부거래는 청산이 아니다”며 “이를 정부기관이 들여다보면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취지가 금융소비자 보호인데 오히려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빅테크는 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IT기업을, 핀테크는 IT기술을 활용한 금융서비스 기업을 뜻한다.

한은과 금융위 갈등 격화

이 말을 이해하려면 지급결제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지급결제는 현금을 제외한 모든 지급방식에서 발생한 거래를 확정하는 공적 시스템이다. 상식과 달리 신용카드·스마트폰 결제 등으로 상품·서비스를 구매해도 대금이 바로 상대방 계좌에 입금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한국금융결제원의 ‘청산’ 과정을 거친다. 당일 있었던 소액결제를 모두 모아 은행과 은행 간 주고받을 돈을 산정해 통보하는 행위다. 이렇게 통보된 내역은 한국은행이 최종 ‘결제’해 거래를 마친다. 규모가 큰 기관 간 ‘거액결제’는 청산을 한국은행이 직접 한다.

이때 청산은 금융회사 간 거래에만 적용한다. A은행에서 B은행으로 줄 돈이 얼마냐를 따지는 게 청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융위는 빅테크·핀테크기업 내부의 거래까지 ‘청산’을 하고, 이를 위한 별도 기관을 두겠다고 하니 한국은행이 발끈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지급결제를 둘러싼 기관 간 갈등의 양상이다.

네이버은행 탄생?

그렇지만 전문가들의 우려는 이런 기관 간 갈등 수준을 넘어선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이 ‘비정상 국가’라는 표현까지 할 정도다. 왜일까. 조혜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은 “전자금융종합그룹 출현을 독려하는 법안”이라고 표현한다. 지급결제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뿐 아니라 금산분리의 원칙을 깨고 비금융회사가 금융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도록 열어 주는 것이란 말이다.

이번 법안에서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제도 도입을 명시한 게 이런 해석의 배경이다. 개정안에서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선불지급수단과 후불결제업을 모두 허용받는 사업자다. 선불결제수단은 이미 시행하고 있다. 네이버계정에 돈을 입금하고, 이를 한도로 상품·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체크카드·신용카드 등 전통적인 결제수단을 ICT기술로 혁신한 사례다.

지금까지는 빅테크·핀테크 사업자가 은행 간 거래를 중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고객이 예치한 돈이 네이버계좌에 쌓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빅테크·핀테크 사업자는 아예 이 돈을 예탁받을 권리가 생긴다. 축재가 가능하다. 예탁받은 돈에 이자를 붙여줄 수는 없도록 해 은행과 차별을 뒀지만 빅테크·핀테크기업이 이 돈으로 부동산 투자 등 다른 자산운용을 하도록 허용한다. ‘준은행업’인 셈이다.

금융규제도, 3월 시행 앞둔 금융소비자보호법도 제외돼

게다가 이런 자산운용 행위에서 고객의 동의도 필요 없는 구조다. 자칫 고객 이익에 반하는 투자도 나타날 수 있다. 송종운 백석예대 초빙교수(경영행정학)는 “고객의 이익 경계를 넘어 사업자 이익 극대화를 위해 자금을 운용관리할 수 있어 이익은 사업자가 챙기고 손실은 사회에 떠넘기는 사업자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불결제업은 일종의 신용카드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용자 1명이 선불 예치금 일부를 충전하고, 30만원 한도 내에서 외상구매를 할 수 있다. 조혜경 선임연구위원은 “만약 3개의 후불결제서비스를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1천80만원의 외상구매가 가능한 셈”이라며 “2017년 경제활동인구 1인당 신용카드 사용액이 연간 1천669만원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이런 유사 금융업을 빅테크·핀테크 기업에 열어 주면서도, 비금융회사라는 이유로 관련 규제에서 모두 빠져나가도록 했다. 3월 시행을 앞둔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도 적용 제외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뒷길’이 열리는 셈이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이상훈 금융노조 금융경제연구소장은 “개정안 발표 뒤 이미 네이버 등 빅테크·핀테크 업체가 종합지급결제업에 뛰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산업자본이 종합지급결제업을 영위하면서 발생할 이해충돌 문제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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