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추락해 사망한 화물노동자 고 심장선씨의 아들이 지난해 12월1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노조 관계자의 발표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정기훈 기자>

업무 중 재해로 화물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현행 산재보험 제도는 재해노동자 보호에 턱없이 미흡하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수출입 컨테이너·시멘트·철강재·위험물질(인화성 물질)을 운송하는 화물차주에게 산재보험을 당연적용하고 있다. 산재보험 가입이나 보험료 납부 여부와 무관하게 업무 중 재해가 발생하면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해당 품목을 운송하지 않는 화물노동자가 80%에 이른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스크루컨베이어를 고정하던 화물노동자가 화물에 깔려 사망한 사고, 같은해 11월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석탄회를 차량에 싣다 추락사한 사고, 최근 경남 진주에서 석고보드 하차 중 발생한 사망사고 피해자는 정부가 정한 산재보험 적용 품목을 운반하는 노동자가 아니다. 계약내용과 다른 업무 수행 중 발생한 사고는 고용노동부 별도 사고 처리 지침에 따라서 산업재해를 인정받기도 하지만, 재해자쪽이 계약에 따른 업무가 아니라는 점과 사업주 지시에 따라 일한 것임을 입증해야 한다.

업무 중 재해임이 명백함에도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가 계속되는 것이다. 모든 화물노동자, 나아가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침있지만,
산재 인정은 산 넘어 산”

25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따르면 지난 19일 경남 진주에서 농막제작업체 사업주를 도와 석고보드를 하차하던 화물노동자 A씨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A씨 유족은 산재 신청을 준비 중이다. A씨는 산재보험 당연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화물노동자 주요 업무인 안전이 아닌 화물 하차작업을 돕던 중 재해를 입어 고용노동부 ‘계약내용과 다른 업무 수행 중 발생한 화물자동차 운전자 사고 처리 지침’이 적용될 것으로 본부는 보고 있다.

고관홍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지침 내용의 핵심은 계약에 따른 업무를 했는지 안 했는지, 묵시적이든 명시적이든 지시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라며 “상하차 업무를 하라고 (가해자가) 지시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당연히 지시가 있었다고 보고 산재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침 적용 요건을 충족한 화물노동자는 임의가입 대상이 아닌 업무를 지시한 사업주에게 고용된 임시노동자로 본다.

당연적용 대상이 아닌 화물노동자가 해당 지침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다. 지난해 9월 태안 화력발전소 화물노동자 사망사고는 화물을 모두 적재한 뒤 화물노동자가 이를 로프로 고정하던 중 발생했다. 서부발전은 사고 당시 물품 고정작업은 화물노동자 본연 업무라 회사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유족이 산재를 신청했다고 해도 산재 인정을 두고 분쟁이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업무 중 재해로 척추 다쳐도 산재 불승인”

사망에 이르지 않은 재해자들은 산재 불인정으로 재해 고통을 홀로 견뎌 내고 있다. 지난해 5월 화물연대본부가 고용노동부 산재처리 지침을 근거로 화물노동자 8명의 산재보상을 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이 중 2건은 불승인됐다. 지침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강동헌 화물연대본부 전략조직국장은 “근로복지공단은 조합원이 화물차량 운전석에 앉아 적재된 컨테이너를 크레인으로 들어올릴 위치를 조정하는 상황을 보고 ‘운행 중 차량’으로 판정했다”며 답답해 했다. 수출품을 운송하는 컨테이너트럭 화물노동자 임아무개씨는 2017년 8월 화물차량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컨테이너와 함께 차량이 크레인에 의해 들어올려지는 바람에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이 사고로 척추가 골절됐지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같은해 11월 업무 중 재해를 입은 안아무개씨도 마찬가지다. 안씨는 사용을 마친 FR컨테이너를 선주에게 반납하기 위해 양쪽 벽체를 접는 과정에서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재해자쪽은 “선주는 항상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FR컨테이너를 접은 상태로 반납하라고 지시해 왔고, 재해자는 관행적으로 관련 업무를 수행하다 다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FR컨테이너를 접는 과정은 운송 과정의 일환이라고 봐 산재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특수 컨테이너의 일종인 FR컨테이너는 6면이 닫힌 일반 컨테이너와 달리 윗면과 좌·우 벽면이 트여 있고 사용 후 벽 하단 핀을 빼면 앞벽과 뒷벽을 접을 수 있다.

두 재해자는 지난해 9월 근로복지공단에서 불승인 판정을 받은 뒤 결정에 불복해 심사청구를 제기했지만 최근 기각됐다. 노동자들은 대응방안을 고민 중이다.

“특수고용직, 산재 적용 대상 지정제도 한계”

고관홍 노무사는 “화물노동자의 경우 지난해부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당연적용되거나 노동부 지침에 따라서 산재로 판정받기도 하고, 중소기업 사업주 특례적용을 받는 경우도 있다”며 “모든 화물 노동자가 일하는 양태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어떤 화물을 운송하고, 어떤 트럭을 모는지에 따라 산재 적용방식이 달라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화물노동자에게 개별 지침과 무관하게 산재를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산재보험 적용 특수고용 노동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적용 대상을 지정하는 산재보험 특례제도로는 사각지대를 메울 수 없어 보인다.

마트 온라인 배송기사는 고객이 주문한 물품을 배송하는 사실상 택배노동자와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노동부는 현행 산재보험 제도에서는 당연가입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조윤희 공인노무사(서비스연맹 법률원)는 “온라인 배송기사는 업무형태를 보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산재보험법 시행령 125조에 규정된 택배원으로 봐야 한다”며 “동일·유사하게 상품을 인수하는 작업을 하고 배송하는 업무를 하기 때문에 같은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산재를 당할 위험성도 같은데 산재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특수근로형태종사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처럼 산재를 전면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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