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컨테이너 홈 사이에 나무 잔해가 떨어져 있다. 특수 컨테이너의 일종인 FR컨테이너는 안전핀을 빼 앞/뒤 벽면을 접을 수 있다.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스물세 살 청년 하청노동자가 경기도 평택항에서 지난달 22일 300킬로그램에 달하는 컨테이너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전 안전교육이나 별도 안전장치 없이 접이식 컨테이너인 FR컨테이너 위를 정리하던 중 발생한 사고다. 유족과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원청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지게차 작업 중에 나무 잔해 정리”

6일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평택항 신 컨테이너터미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작업 과정에서 전반적인 안전관리가 미흡했다”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했다. 대책위는 경기공동행동·민주노총 평택안성지부·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를 비롯한 13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됐다.

대책위에 따르면 대학 3학년생인 이선호(23)씨는 2019년 12월부터 하역사 ㈜동방의 하청업체 ㅇ사 소속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평택항으로 출근한 그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은 컨테이너 안 동·식물 검역을 주로 하던 그가 FR컨테이너 관련 업무에 처음 투입됐다.

FR컨테이너는 특수 컨테이너의 일종으로 6면이 닫힌 일반 컨테이너와 달리 윗면과 좌·우 벽면이 트여 있다. 일반 컨테이너에 싣지 못하는 대형기계장비 등의 수출선적에 주로 이용된다. 사용을 완료한 컨테이너는 하단 안전핀을 빼 앞뒤 벽을 접어 보관한다. 이씨는 재해를 당한 날 안전핀을 뺀 뒤 컨테이너 위 홈에 있던 나무 잔해를 제거하는 일을 했다.

문제는 지게차를 이용해 벽을 접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대책위는 “반대편 날개가 접히면서 발생한 진동 탓에 이씨 부근에 있던 날개가 함께 접혔다”며 재해 상황을 설명했다.

화물업계에 따르면 양쪽 벽면에 안전핀이 빠진 상태로 지게차가 충격을 줄 경우 반대쪽 벽면 또한 반동으로 접힐 수 있다는 위험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안전교육과 안전매뉴얼 부재가 화를 불렀다.

동방 관계자는 “아침마다 안전교육을 하고 서명을 하지만, 해당 작업과 관련해 위험성 평가를 하거나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고 작업이 이뤄졌다”며 잘못을 시인했다.

“비용절감 위한 외주화, 인력 충분히 고용 못하는 구조”

예견된 재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FR컨테이너를 접거나 세척·검수·수리하는 업무는 컨테이너를 소유한 선사 몫이다. 그런데 대부분 선사는 용역업체에 이 컨테이너 관리업무를 맡긴다. 동방은 선사의 부탁으로 3~4년 전부터 이 업무를 수행해 왔고, 하청업체에 업무를 맡겼다.

20년 넘게 화물노동자로 일해 온 김근영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인천지역본부장은 “선사가 최저입찰제로 입찰을 받다 보니, 충분한 인력 고용이 불가능하다”며 “한 사람이 현장에서 점검작업을 하고 있다면, 누군가는 안전관리 역할를 수행해야 하지만 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본부장은 “FR컨테이너의 경우 일반 컨테이너보다 작업 과정에서 위험성이 커 안전교육을 시킨 뒤 2인1조로 작업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씨는 원래 동식물 검역을 맡았지만, 지난 3월1일부터 FR컨테이너 관련 업무도 추가로 떠안게 됐다. 비용 절감을 위한 인력 통폐합이 있었다고 대책위는 판단했다.

동방 관계자는 “‘번들 작업’은 컨테이너 안 이물질 제거와 양쪽 벽면을 접어 3·4단으로 접어 올리는 모든 작업을 통칭한다”며 “(재해자에게) 해당 업무를 시킨 것이 사실이지만 원청 직원이 직접 현장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에 경찰 조사를 받고 사고 책임을 지겠다”며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유족과 대책위는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 △평택해양수산청 등 유관기관의 재발 방지 대책 △평택항 내 동일·유사 공정 작업중지와 특별근로감독 실시 등을 요구했다.

현재 고 이선호씨의 유족은 재해조사 과정에 유족과 유족 추천 전문가 참여를 보장하며 13일째 평택 안중 백병원장례식장에서 빈소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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