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세이브존 대전점 전경. <세이브존 홈페이지 갈무리>

대형마트인 ‘세이브존’이 협력업체 소속으로 일하던 기간제 계산원들을 직접고용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계산원들이 매장에 파견돼 세이브존으로부터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근로를 제공했기 때문에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정년이 지난 계산원에게도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대전점 계산원 13명,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제기
1심 “근로자파견계약 해당, 세이브존 지휘·감독”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전지원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주식회사 세이브존아이앤씨(세이브존)의 기간제 계산원 1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세이브존 계산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3건 중 마지막 사건이다. 앞선 2건의 소송은 회사의 요청에 따라 합의로 마무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세이브존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근로자파견사업 관련 허가를 받지 않은 씨앤아이 등 인력공급업체 세 곳을 설립했다. 이후 세이브존의 관계사인 아이세이브존은 인력공급업무를 씨앤아이에 재도급했다. 씨앤아이는 2014년 9월까지 전국 6개 지점에 상품진열·계산·포장업무 등을 담당하는 인력 400여명을 공급했다.

그러자 대전점에서 근무한 계산원 13명은 ‘실질상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며 2019년 2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세이브존은 계산원들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며 계산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협력업체와의 용역계약은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고, 계산원 업무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서 정한 근로자파견대상업무가 아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세이브존이 계산원들에게 고용의무를 이행했더라면 받았을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계산원들이 씨앤아이에 고용된 후 아이세이브존을 통해 매장에 파견돼 세이브존의 지휘·감독을 받았다”며 “씨앤아이가 용역계약에 따른 업무 수행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여지가 사실상 없었다”고 봤다.

협력업체가 고유기술이나 자본을 별도로 투입하지 않은 채 세이브존만을 상대로 사업을 영위했다는 점도 불법파견 근거로 삼았다. 협력업체가 교체되면서도 고용관계가 대부분 승계돼 왔고, 경력자의 노무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용역계약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취지다.

씨앤아이가 세이브존에 ‘사전근무편성표’를 작성해 제출한 부분도 사업 독립성이 없다는 판단에 힘을 실었다. 특히 계산원들은 각종 할인행사를 하면서 세이브존이 지정한 색깔의 티셔츠를 착용하고 일하기도 했다.

항소심 “정년 지나도 불법행위 손해배상금 지급 의무”
“간접고용 만연 대형마트 불법파견 책임 인정” 의미

세이브존은 1심에 불복했지만, 항소심도 “수급업체 변경 이후에도 계산원들은 매장에서 여전히 세이브존의 지휘·명령을 받으면서 근로에 종사했다고 판단된다”며 세이브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규직 직급을 기준으로 손해배상 액수를 산정한다고 판결했다.

정년이 지난 계산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계산원 한 명은 손해배상 청구 시작 전에 정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청구기간 동안 파견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계산원이 수급업체에서 받은 임금 등을 공제한 차액을 불법행위(차별처우)에 기한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계산원들을 대리한 강호민 변호사(법무법인 오월)는 “간접고용이 만연한 대형마트 원청의 불법파견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라며 “법원은 별도직군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던 세이브존의 주장을 배척하고 정규직 급여체계 적용을 전제로 고용의무를 명시적으로 확인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정년 도과자의 경우에도 실제로 근무한 기간의 차별적 처우는 불법행위라고 인정된 것도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한편 파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세이브존 경영진은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대형마트 사업주가 파견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최초 사례다. 유영길 세이브존 전 대표는 2019년 1월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유 전 대표의 항소가 2심에서 기각되자 유 전 대표가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세이브존 전 공동대표와 아이세이브존 대표도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씨앤아이 대표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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