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용산구 보건소 전경. <홍준표 기자>

“계약기간 중간에 출산해서 90일의 출산휴가를 쓴 게 문제였을까요? 아기가 너무 어려 육아시간을 썼던 게 문제가 됐을까요? 업무가 많은 날에는 사용하지 못했는데요. 계약이 종료된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서울시 자치구 보건소의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이 임용된 지 9개월 만에 계약해지를 통보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공무원은 출산휴가와 육아시간을 사용했고, 육아휴직이 예정돼 있다는 이유로 계약이 종료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호소했다. 출산휴가와 5세 이하 자녀 2시간 육아시간은 법률과 시행령으로 보장받는다.

위탁업체 6년 근무 후 공무원 임용
‘육아휴직 사용 계획’ 묻고는 재계약 거절

2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서울시 용산구 보건소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A(35)씨는 지난 16일 보건소에서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근무 시절 평가에서 최하등급인 D등급을 받아 실적이 저조했다는 이유에서다. 12월31일 계약종료를 불과 보름 앞둔 시점이었다.

A씨는 용산구 보건소에서 2015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약 6년 동안 위탁업체 소속 기간제 영양사로 근무했다. 이후 올해 2월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마급)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해 ‘통합건강증진사업 영양사요원’으로 합격했다. 기존에 했던 업무와 거의 비슷했다.

그는 3월4일부터 보건의료과 만성질환관리팀에서 △영양플러스사업 세부기획 및 운영 △용산구 시민건강관리센터 방문객 상담 △영양상담실 및 영양프로그램 운영 △감염병관리업무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자녀를 출산하고, 7월부터 9월까지 90일간 출산휴가를 다녀왔다. 복직한 뒤에는 11월9일부터 육아를 위해 하루 2시간의 육아시간을 사용했다. 5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경우 24개월 안에서 육아를 위해 1일 최대 2시간의 육아시간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지방공무원 복무규정(7조의7 8항)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계약 종료가 다가오는 12월이 돼서도 재계약 언급이 없었다. 반면 같은 팀의 다른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들은 모두 계약이 연장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들은 업무수행능력 평가 결과에 따라 총 5년까지 계약연장이 가능했다. 하지만 용산구 보건소는 매년 재계약 여부를 결정했다.

A씨는 담당 주임에게 재계약 여부를 문의했다. 주임은 업무 처리가 늦었다며 곧 알려 주겠다면서도 “내년에 육아휴직을 쓸 예정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A씨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알아보고 있어 아직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주임은 출산휴가 기간에도 육아휴직 사용 계획을 확인했다.

불안감을 느낀 A씨는 보건의료과 만성질환관리팀장에게 직접 재계약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팀장은 “올해로 계약이 종료된다”고 답변했다. 다시 주임에게 “정확한 사유가 궁금하다”고 했지만 “실적이 저조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서울 용산구 보건소의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A(35)씨가 23일 오전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A씨는 지난 16일 계약종료를 통보받았다. <홍준표 기자>
▲ 서울 용산구 보건소의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A(35)씨가 23일 오전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A씨는 지난 16일 계약종료를 통보받았다. <홍준표 기자>

출산 3일 전까지 코로나 업무 지원했는데…
팀장 “육아휴직 예상돼 재계약 안 해” 발언

A씨는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같은 업무를 하는 기간제 영양사가 있다는 이유로 실적을 반으로 쪼갰고, 주된 업무가 아닌 점을 문제 삼아 낮은 등급을 매겼다는 게 A씨 주장이다. A씨는 ‘육아휴직 사용’이 예정됐다는 점이 계약해지 사유에 담겼을 것으로 의심했다. 실제 팀장이 다른 기간제 직원과의 대화에서 “육아휴직을 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한 녹음 기록도 있다. A씨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내치기 위해 실적을 조작해 억지 사유를 만든 것 같다”고 주장했다.

특히 올해 3월 함께 임용된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은 계약이 연장됐는데, 자신만 종료된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A씨는 “임신 중에도 코로나19 업무지원과 처음 접해 보는 예산업무까지 배워 가며 주말을 포함해 출산 3일 전까지 성실히 일했는데도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A씨의 상사인 보건의료과 만성질환관리팀장은 이날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A씨가 이곳저곳 찌르고 다니는 바람에 피곤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주임 역시 “답변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보건소가 근무평가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임기제 공무원 인사운영 개선계획’을 통해 내년 상반기부터 근무실적에 C·D등급을 부여할 경우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A씨는 재계약 거절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위배된다며 21일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그는 “7년 가까이 지역 주민의 임산부와 영유아를 대상으로 사업을 꾸려 왔고, 누구보다 출산율을 높이고자 노력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보건소가 명목상으로 내세운 사유는 성과평가 실적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지만 합리적이지 않다”며 “육아휴직 사용이 예상된다는 게 재계약 거절 사유로 보이는데, 사실이라면 국가인권위원회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씨의 계약 종료까지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